|사설| 성경적 생명 윤리를 확립하여 교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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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경적 생명 윤리를 확립하여 교육하자

 

  6.25 전쟁 68주년이다. 인간 생명의 대규모 파괴를 부르는 전쟁은 비극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그토록 염원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 때문이다. 부당한 전쟁과 폭력과 살상을 우리는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10계명 중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로 강조하셨다. 우리는 어느 때고 이 6계명을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반생명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20세기에 프란시스 쉐퍼가 경고한 대로 인간 존엄성의 기초를 망각한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지 않았다면 반생명적 비인간화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전혀 없으며 인간은 마침내 뭔가 특별한 존재로 여길 아무런 이유도 없고 여타의 동물처럼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인본주의적 기초 위에 존엄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존엄성을 부여하셨기에 존엄한 것이다. 이 사실을 수용하지 못하면 생명 윤리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

  윤리적 난제들, 소위 모서리 문제들(edge problems)의 대부분이 생명 윤리의 범주에 든다. 사형, 안락사, 낙태 그리고 최근의 줄기세포의 의료적 활용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것들이 난제인 이유는 늘 인본주의적 상황 윤리의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는 이슬람 국가를 포함한 몇몇 종교적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폐지되었거나 그럴 예정이고 사형제가 있더라도 집행이 유예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형수의 생명도 소중하겠지만 그 전에 그에 의해 죽임당하지 않아도 됐을 생명의 소중함은 더하다. 이 무서운 살인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사형제도의 본뜻을 이해 못한 휴머니즘적 인권 사상은 사형제 폐지를 문명국가의 품위인 양 호도하기에 이르렀다. 안락사나 존엄사도 스스로 자기 생명의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다.

  또한 그동안 많은 논란을 이어 왔던 낙태까지도 이젠 합법화되는 추세다. 지난 5월 25일 전통적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마저 낙태 허용 국민 투표 결과 투표자의 66.4%가 찬성하여 35년 만에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을 폐지하였다. 브라질 등 일부 가톨릭 국가에서는 선택적 낙태 허용 움직임으로 여론 수렴 중이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낙태는 합법화로 많이 기울었고 우리나라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그럴듯한 상황적 명분과 가공할 위력으로 공격을 받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건 무엇인가. 고든 클라크가 미국 사회를 향해 부르짖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강력히 선포하는 것이다. 특히 서두에 언급했듯 윤리의 기초인 10계명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 중에 생명 존엄성의 성경적 원리인 제6계명을 더 많이 강조하고 교육해야 한다. “~ 하지 말라”는 모든 계명이 “해야 할 일”까지 요구하는 것처럼 6계명 또한 단순히 생명을 해하지 말라는 것과 동시에 생명의 존엄성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책임까지 강조한 계명이다. 특히 윌리암 에임스, 존 플라벨 등 대다수 청교도 신학자들은 당대의 생명 윤리에 관하여 구체적 성경적 해석과 적용, 가르침과 실천에 힘썼다. 그들은 직접 살인은 물론이요 간접 살인의 폐해를 더 강조했다. 즉, 단지 물리적 살인을 안 한다고 6계명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일체의 언행적 살인과 폭력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반생명적인 사회 기류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도록 여러 양상과 사안에 개입하였다.

  사회 기류와 관련해 예컨대, 칼빈은 신명기 21:22-23(사형당한 자의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라) 주석에서 “시체를 오래 달아 두어 사람들이 흉측한 모습에 익숙해지며 더욱 빈번하게 살인을 범하는 일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늘날 연극과 영상, 그림 등으로 수많은 살인과 폭력적 장면에 익숙해진 우리 시대의 끔찍한 살상 소식들을 생각해 보라. 그런 것들은 은연중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각심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에 살인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심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반복적인 매체 작업들은 위험한 일이다. 이런 것을 표현의 자유로 방치해 둘 것인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의 부단한 문제 제기와 실제 현장에서의 생명 윤리적 노력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생명 운동의 주도권을 비기독교적 휴머니즘 단체나 그 누구에게 넘겨주기보다 교회가 그것을 품고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성경적 인간 존엄성에 기초한 생명 운동과 생명 윤리 교육을 연구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실천적 방법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교회는 늘 도그마적 교육에만 머물러 적극적 실천성의 추동력을 갖추기 힘들다. 이미 우리 손을 떠나 법제화된 사항들이 늘어난 가운데 앞서 제기한 난제들도 우리의 몸부림과는 별개로 휴머니즘적 인간 존엄성을 주창하는 거대한 인본적 물줄기에 휩쓸리고 있다.

  한국 교회는 맞닥뜨린 현안들을 푸는데 인색해선 안 된다. 모서리 문제들을 방관하는 동안 그것들이 어떤 결론으로 가서 어떻게 법제화되는지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을 순 없다. 속히 대안과 대답을 마련하여 성경적 생명 윤리를 확립하고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