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류의 역사와 언어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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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와 언어의 유사성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인류의 보편적이고 귀중한 가치들은 어떤 형태로든 보존되어야

 

 

국제정세에 있어서 한국의 위기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를지 모른다. 최근 위안화의 세계화를 위해서 한국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해 달라는 중국의 주문에 대해서 굳이 거절할 필요 없이 그런 주문을 역이용하자는 뜻으로 쾌히 받아드리는 것 같다.

 

문제는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과 이해관계를 따질 때, 과거사에 있어서 역사의 한 부분을 강조하여 접근하거나 어떤 역사의 한 부분을 근거로 하여 영토나 국제관계의 합리성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한 학자에 따르면 언어 상 한국민족의 언어는 우랄 알타이 계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지금 일본 동북부에 살고 있는 ‘아이누족의 언어’와 지금 사할린과 흑룡강 강구 지방에 살고 있는 ‘길약어’에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한 때 고대 가야시대로부터 남방으로부터 들어온 ‘드라비다 언어’가 많이 섞여 있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그러나 고대 한어와 고대 ‘길약어’가 소급해 가서 가정될 수 있는 원시 한어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는 원시 알타이어 혹은 원시 드라비다어에 대한 가설 등은 아직도 증명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라는 점이 문제로 남아 있다.

 

즉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민족의 DNA, 언어 친족성 및 문화생활이나 종교생활의 일치성을 기반으로 좀 더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구석기 시대, 석기 시대 혹은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등으로 고전적 역사 이해의 범주들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문명이 크게 발달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성경에서도 잘 증거되어 있듯이 주전 3000년대 경제문서들에서 거래되는 금속들의 종류가 이미 다양하여서 이런 것들이 어느 시대를 결정하는데 있어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은 나라나 상 왕조 시대와 같은 굉장히 후대에 와서 글자를 쓸 때에 붓과 잉크로 썼느냐 아니면 갑골이나 대나무를 사용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시대 이전부터 문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돌이나 값비싼 금속들도 글을 남기는 소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말이나 언어의 역사성은 고대 언어들의 모든 것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료들에 의해서 어원적 그리고 계통적 성격이 잘 분석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백제지방의 산 이름 가운데 찾을 수 있는 백제언어인 Ku-gi가 고대 근동 슈메리어 언어로서 “깨끗한 혹은 흰 금속”이란 의미의 ‘은(Ku-babbar)’과 달리 정확히 ‘금’에 해당된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주전 2000년대 이후에 이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개념으로 고대 한국어가 어원적으로 언제까지 소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심이 있어야 할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스페인 언어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쁘’다는 표현이 한국어와 일치된다고 해서 어원적으로 같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다윗 시대에서도 우리 말 형용사 ‘높’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이프’다가 형용사로 사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유럽의 언어들과 일치하는 보편적인 ‘불’이란 표현도 유럽 해안 저지방 언어인 네델란드 언어와 가장 잘 일치하는 것이 현대 한국어이다. 타밀족과 같은 드리비다족은 고대 슈메리어 언어가 자신들의 것과 가장 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일본어나 한국어에 있어서 동사의 마침형 ‘다’(da)는 5세기 이전의 게르만족 언어의 동사 마침형과 일치한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일치가 고대 슈메리어의 동사 마침형과 일치한 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특별히 한국어는 역사적으로 그리스 언어나 후대의 유럽 언어권에서 만나는 단어나 문장 사이에 ‘과’로 연결되는 그런 어씨도 있지만, 주전 2400년의 고대 셈족에서 사용되었던 단어들 사이에 사용되는 ‘와’(wa: and)의 관계사를 가장 원형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언어 역시 한국어뿐이다.

 

더구나 세계의 어떤 언어들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는 친족어로서 주전 2400년 이전의 ‘할(great) 아비(Gal-Abi)’, ‘할(great) 어미(Gal-Ama)’ 형태의 형용사 사용이 보존된 언어는 한국어뿐이라는 점도 놀라울 뿐이다. 우리말도 그 형용사를 잃어버릴 정도로 고대 형용사가 멀리 우리말에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세계 언어들이라는 사실이다.

 

창세기 10장과 같은 언어와 민족 및 땅에 대한 고 지도 안에 지금의 모든 나라나 민족들이 다 포함한다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민족이나 개인이든 인류의 보편적 DNA와 그 문화의 뿌리 및 숨어 있는 역사들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지금의 어떤 강대국이든 그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귀중한 가치들을 어떤 형태로든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이웃이 다른 이웃의 생명을 존중하듯이 그들이 살고 있는 땅과 환경 및 문화 혹은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 존중이 없다면 언제든지 이웃을 해하는 강도와 도둑질로 비춰질 수 있다.

 

합리성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진심과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진심과 이웃 사랑의 근본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인류에게 영원히 향기와 빛으로 있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