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숲을 여행하다_이종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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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숲을 여행하다

<이종섭 시인 _ 찬미교회 목사>

  여행을 할 때 숲이 없다면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숲이야말로 여행의 목적지이며 여행을 여행되게 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숲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은 여행지가 참으로 많다. 가까이에도 있고 먼 데도 있다. 숲을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를 돌아볼 줄 안다. 숲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과 같고 자기를 치유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 숲은 생명의 숨결이 서려있는 집이다. 그 숲에서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그 숲으로 돌아가는 삶을 산다.

 

  숲에는 숲이 부르는 웅대한 노래의 집합체가 있다. 그 숲에서 각양각색의 노래를 듣고 음악을 감상한다. 작은 노래에서부터 큰 노래에 이르기까지, 소품의 기악곡에서부터 거대한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끝이 없는 그 노래, 아무리 들어도 질리기는커녕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와 가슴과 심장을 살아나게 하는 숲의 연주에 내 귀가 솔깃해지고 내 마음이 편안하게 열려진다. 바로 그 순간 나도 숲속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숲과 함께 호흡하고 숲과 함께 눈을 감고 숲과 함께 눈을 뜬다. 묵상에 잠겨 숲의 일부가 된다. 내 가슴에 맴도는 그윽한 노래가 숲속 가득 울려퍼진다.

 

  숲속에 시내가 흐르고 호수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 숲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누리는 쉼과 안식의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 마음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상처, 아무도 모르는 갈등을 직면한다. 흘러내리는 물이 고여서 생긴 호수, 빠져나가기보다 모이기만 하는 호수. 바다처럼 파도도 치고 풍랑도 일면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기도 하고 할 말도 하면 좋으련만, 고이는 대로 들어오는 대로 받아두기만 하면서 점점 무거워지기만 하는 나를 닮았다. 그게 싫어, 그게 힘들어 작은 돌 하나 집어 들고 호수를 향해 던져본다. 퐁당, 희미한 소리를 내며 호수에 박히는 돌. 잔물결을 일으키며 가라앉는 돌. 다시 던져보는 돌은 호수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던지는 돌이다. 내 마음엔 오래 전부터 잔물결이 일고 있었지. 이미 누군가가 내 마음에 돌을 던졌고 그 돌이 가라앉아버렸으면 좋으련만 시시때때로 떠올랐다 가라앉고 다시 떠올랐다 가라앉고 하면서 그때마다 잔물결을 아프게 일으키곤 했었지.

 

  숲과 호수는 하늘이 배경이 되어야 제격이다. 하늘이 숲의 여백을 살려주고 하늘이 호수의 색채와 아름다움을 더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숲에서 보는 하늘은 더 근사하다. 호숫가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가슴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그 하늘은 우러러보는 머리와 가슴을 맑게 식혀주고 겸손하게 해준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거.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른다는 거. 마음을 열어 하늘을 소망한다는 거. 하늘을 넘어 우주를 향한다는 거. 우주의 광활함과 위대함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한다는 거. 그 우주 안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 그 속에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가 존재한다는 거. 이때쯤이면 내 가슴속에 경외심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의 창조주를 통해 내 마음속에 생명의 숨결을 가득 채움 받는다. 창조주의 거대한 손은 숲속 하늘에서 볼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해서 지상의 근심과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누구나 하늘을 바라보고 끝없는 우주에 마음을 두며 살 것이 아닌가. 땅만 바라보며 땅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하늘을 바라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뜻이 아님을 말해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만 현재를 분명하게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 힘들고 지친 삶에서 앞길을 바라보며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 다시금 그런 고통이 찾아올지라도 이제는 피하지 않고 그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그 하늘을 본 뒤에 편지를 쓴다. 숲에서 보고들은 편지다. 강물이 쓰는 편지다. 일 년을 준비했다가 쓰는 편지. 또 일 년을 속절없이 기다렸다가 쓰는 편지. 온 몸을 비워 붉게 쓰는 편지. 다음 해에도 푸른 잉크를 가득 채웠다가 또 다시 붉게 써내려가는 편지. 그 모든 편지의 주제는 그리움이다. 그리워서 쓰는 편지들이다. 

 

  상처를 치유 받았다고 해서 상처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다. 이후에도 또 다시 흔들릴 수 있고 그 흔들림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하며 그 흔들림을 통해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두 발로 걷고 심장으로 지나왔던 숲과 호수와 하늘을 통해서 얻은 지혜와 경외심은 그때마다 지팡이가 되어 나를 지탱해주고 부목이 되어 나를 더욱 단단히 세워줄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때때로 시련이 찾아오고 고통이 찾아올지라도 나즉한 목소리로 편지를 쓰면서 견딜 수 있겠다.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든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숲을 돌아 나오는데 발치에 보이는 아주 작은 물웅덩이. 움푹 파인 바위 구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낙엽이 잔뜩 들어 있다. 계절의 끝으로 가는 가을에 만들어진 아주 작은 흔적 하나가 내 마음을 잡아챈다. 이렇게 아물어가는 것인가 했으나 아직까지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가 뒤늦게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염려 없다. 숲이 나에게 숲을 빠져나가기 전 마시고 가라고 준비해 놓은 냉국이 참으로 정갈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숲의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숲의 배려가 고마웠다. 숲의 고운 손으로 차려놓은 맑은 국 한 사발을 내 마음이 먼저 마셨다. 시원했다. 몸과 마음 모두 해갈했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숲이다. 도시를 여행해도 그건 숲으로 가는 과정이다. 숲을 가기 위한 거점이다. 숲에서 보는 물과 숲에서 보는 하늘. 내 마음을 비춰주고 내 마음을 씻어준다. 숲이 생명이다. 나를 살리는 숲, 오늘도 나는 숲에서 눈을 감고 숲에서 눈을 뜬다.

  숲이 있는 한 나의 여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숲이 내가 되고 내가 숲이 되는 그날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