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시편촬요 120년, 피터스 목사를 기념하자_박준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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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촬요 120년, 피터스 목사를 기념하자

< 박준서 교수_연세대학교 구약학 명예교수 | 피터스목사 기념사업회장>

 

최초로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 (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 한국명 피득)는 역사상 최초로 구약성경 한국어 번역 사역을 이루신 분이다. 120년 전인 1898년 시편을 번역하여 구약성경 한글 번역의 효시가 된 ‘시편촬요’를 출간했고, 그 후 구약전서 번역과 개역구약성경 완성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피터스 목사는 한국인들에게 구약성경을 한글로 읽을 수 있게 해 준 공로자요,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의 은인이다.


피터스 목사

  그는 1871년 제정 러시아 시대, 정통파 유대인(Orthdox Jew)가정에서 태어나 히브리어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히브리어에 능통하였고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지녔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은 이렇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의 빈곤한 상황과 유대인 박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그는 집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1895년(24세) 일본 나가사키에서 화란 개혁교회의 영향을 받은 교회에 나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세례를 받았다. 당시에 그에게 세례를 준 선교사의 이름을 따라 피터스(Pieters)로 개명하였다. 정통파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 가문에서 추방당하고 혈연관계가 단절되는 고통이 그에게도 따랐다.

  1895년 한국에 온 그는 한국어를 배운지 3년 만에 1898년 시편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것이 바로 시편촬요(1898년)로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구약성경 한글 번역본이었다. 아울러 그는 오늘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가 75장 ‘주여 우리 무리를’과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를 작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능통한 히브리어를 활용해 구약성경 번역에도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최초의 한글번역 ‘구약젼셔(1911년)’도 출판되었다. 이후 그는 구약성경 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서 ‘개역 구약성경(1938)’ 출간에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는 46년간 성경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를 위해 봉사한 후 70세에 은퇴하였고 미국 LA지역 Pasadena시 소재 은퇴 선교사 주거 시설에서 여생을 지내다 1958년 87세로 소천하였다. 그의 몸은 Pasadena 외관 공용묘지 Mountain View Cemetery에 안장되었고 그의 공적을 기록한 묘비도 없이 무연고자 묘지처럼 방치되어 있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최근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시편촬요 표지와 본문 일부(시편23편)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을 제안하며

  마운틴 뷰 묘지(Mountain View Cemetery). 미국 LA근교 패서디나 지역에 있는 공용묘지의 이름이다. 한 세기 이상 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후의 안식처’를 제공해 온 오래된 묘역(墓域)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넓은 묘역을 뒤덮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묘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한 모양의 작은 묘석들도 있지만, 우뚝 솟아 기념비 같은 형태의 큰 규모의 묘석들도 많이 보인다.

  빽빽하게 묘석들로 들어찬 묘역 한편 외진 곳에 잔디와 잡초가 무성한 또 다른 묘역이 있다. 이 외진 묘역에는 묘석 하나 보이지 않고, 다만 매장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석판 하나를 묘지 위 평지에 묻어 놓아, 그 묘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을 뿐이었다. 필자는 묘소 관리소의 컴퓨터 조회를 통해서 피터스 목사의 묘소가 바로 이 외진 묘역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막상 그 묘역에 가보니 이름을 새겨놓은 석판 위로 잔디와 잡초가 뒤덮여 있어 쉽게 묘소를 찾을 수 없었다.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헤쳐 가며 찾던 중 마침내 PIETERS라는 이름이 새겨진 석판을 찾아냈다. 피터스 목사의 묘소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묘소를 찾았다는 감격보다 ‘아 이럴 수가?!’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에게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은인’의 묘가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돼 있다니! 그곳에는 그가 구약성경을 최초로 한글로 번역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 하나도 없었다. 또한 그의 이름 앞에 REV. 라는 직함도 적혀있지 않아, 그가 목사였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다.

  한국 교회 성도들만큼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지 않다고 자부한다. 성경없는 한국교회는 생각할 수도 없다. 피터스 목사가 번역해 준 성경을 가슴에 품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섬겨 왔고, 교회 성장을 이룩했다. 독일 사람들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준 마틴 루터를 5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잊지 않고 기리며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해 준 피터스 목사를 기리기는커녕, 그의 묘소를 마치 무연고자의 것처럼 방치하고 있다니! 필자는 부끄러운 자괴감으로 그의 묘소 앞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들지 못했다.


피터스 목사 묘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의 은인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고 그의 공적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

  기념사업의 구체적 내용으로 우선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를 그의 묘소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또한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캠벨 여사와 에바 필드 여사 묘역에도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알리는 공적비를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사의 표시가 될 것이다. 둘째는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앞으로 오는 후세들도 그를 잊지 않도록 ‘피터스 목사 기념강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피터스 성경연구원’을 개설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 교회는 교단 교파를 초월해서 그가 번역해 준 성경을 읽으며 성장해 왔다. 그가 번역해 준 성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한국 교회에 공헌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한국 교회는 피터스 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가 이룩한 공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 말씀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에 동참할 것을 굳게 믿는다.

박준서 교수 Parkjs@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