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투 운동과 한국 교회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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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투 운동과 한국 교회가 할 일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도 성적인 피해를 당했다(Me Too).”는 용기 있는 폭로의 위력은 사회 전반의 기조를 흔들며 태풍 급으로 발전했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점화되어 한국과 전세계로 확산한 이 운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핵심적으로 성찰해야 하는가?

  모든 사회적 문제들은 인간의 죄성에 기반한 윤리적 타락에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미투 운동이 유독 우리에게 긴장감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기본적 사회 구성 단위인 남녀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며 성(性)과 힘의 질서를 포함한 가정과 사회의 기본 윤리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사회 윤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집약되고 그것은 남녀노소와 지위고하, 인종을 넘어선 기본적인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예의를 명한 것이다. 당연히 그 어떤 차별과 폭력도 이 숭고한 계명에 반하는 왜곡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과 사회에 부여하신 기본적인 윤리와 질서의 틀을 깨는 방식의 운동은 그것이 보편의 인간들에게 그럴싸한 동의와 반향을 일으키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참된 유익이 없는 타락의 길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왜곡된 페미니즘, 동성애, 동성혼 같은 운동들이 그런 예이다. 이는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쉽게 넘어서는 현대의 반성경적인 윤리의 폐해들이다.

  우리의 인식의 기초인 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근본은 서로 평등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 존엄성에 근거한다. 따라서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상호 폭력과 억압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반하며 인간의 타락, 곧 죄성에 기인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심으로써 돕는 배필 즉, 어떤 위치의 차별이 아닌 서로 유익한 존재로서 구별되지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시고 종속이나 불평등의 오류를 차단하셨다. 이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는 말씀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이런 성경적 기초 위에서 국제 라브리 대표였던 빔 리트 께르크(Wim Rietkerk)의 견해를 빌려 남녀 관련 윤리적 원리를 정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됨을 우선하자는 것이다. 남녀의 생물학적 구별의 개념을 떠나 남녀 모두 인간(사람)이라는 존엄성을 지닌 동등한 존재로 대해야 한다. 비단 남녀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의 평화와 따뜻함은 인간이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정당함에서 비롯된다. 둘째, 통일성 안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모든 인간 상호 간에도 그렇듯이 남녀에게도 생물학적 차이를 포함한 서로의 차이가 있다. 꼭 그런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한 편의 종속이나 가치 하락을 조장하는 일인 양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은 서로 돕는 역할의 본래적 의미를 구현함이요 경쟁과 시기와 억압이나 주종관계의 고리를 끊는다. 셋째, 남녀가 서로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님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가치실현을 위해 다른 이성을 도구처럼 사용하거나 또는 스스로 자신의 존귀함을 하락시키고 한 편에 끌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한 사회 속에서 남녀가 서로 필요한 귀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 일이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동역자의식을 말함이다.

  이 인식 위에 현대사회를 다시 보면 여전히 남성 중심의 비성경적인 질서가 철거되지 않고 있다. 여성해방, 여권신장, 양성평등, 남녀고용평등법 등 이 모든 논의들의 근저는 무엇인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기울기가 남성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에 대해 “남녀 편 가르기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간이 인간을 모독하고 짓밟은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지나치게 남성 위주로 굴러갔다.”라고 일갈한 연극인 손숙 씨의 말이 폐부를 찌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유교적 질서에 기반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공통의 문제이다. 일제의 위안부 죄악을 통해 보듯 힘을 가진 인간, 특히 남성이 여성을 향한 본질적인 예의를 상실할 때 여성을 본능적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만 보고 성적 폭압과 위해를 가하는 구조는 성폭력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투 운동으로 우리가 성찰해야 할 문제는 단순한 성폭력의 나뭇잎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인식의 뿌리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없이는 미투 운동의 성과는 요원하다. 일회성 폭로 운동으로 귀결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익숙해지면 무관심으로 가고 피해자 가해자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된다.

  들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까만 상처가 남지만 그것은 파괴가 아닌 새로운 봄의 준비이다. 따라서 미투 운동은 상처를 덧나게 하고 남녀가 서로 상처를 주고 사회에 불안을 조장하는 싸움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진정한 치유와 화해의 불길이 돼야 한다. 벌써 ‘펜스룰’(Pence Rule), 피해자 역차별, 남녀 성 대결, 가짜 미투 등 미투 운동의 최종지향점과는 현격히 먼 왜곡이 동반되었다. 이런 때에 한국 교회는 미투 운동의 본의가 변질되지 않고 그 사회적 성과를 거둘 수 있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성경적 ‘이웃 사랑’의 윤리로 ‘남녀인식’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예의’를 성찰하고 실천하며 잘 교육하여 사회의 윤리적 회복과 발전에 도움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