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외래특강| 종교개혁과 인문주의_고재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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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외래특강

종교개혁과 인문주의

-종교개혁의 동력 인문주의 정신에 주목하다-

< 고재백 교수_국민대 | 철학/역사학>

 

문주의자들이 인간중심적 현세지향적인 가치를 중시했고 기독교에 대해 신랄히 비판했으나 기독교 자체를 회의,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인문주의 정신은 비판정신이자,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안을 탐구하려는 모험과 창조의 정신이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한 동력이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성찰하고 답할 이 시대에 비난이 아닌 인문적 비판정신은 진리탐구의 방법이며 개혁과 성숙의 매개이다

 

인문주의 없이 종교개혁 없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고, 또한 성찰하는 일을 말한다. 지난 해 종교개혁 500주년이 국내외에서 대대적으로 기념되었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 그리고 갖가지 집회가 개최되었다. 종교개혁에 관한 책도 수십 권이 출간되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교회를 개혁하자는 움직임, 그리고 종교개혁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자는 논의들이 활발했다. 그런데 지금, 축제가 끝난 뒤 휑하니 빈 광장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맴돌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기억하고 이어받고 있는 것일까? 한국 교회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현재를 성찰하는 역사의식을 잘 발휘하고 있기는 한가?

  ‘인문주의 없이는 종교개혁 없다.’ 이 말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타당하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중세 교회의 부패와 타락, 새로운 대안신학의 등장과 도전,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영웅적 활동 등이 강조된다. 그런데 개혁운동의 발발과 진행 과정에서 동력을 제공한 것은 인문주의 정신이었다. 인문주의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을 것이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개혁과 갱신 방안들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요즈음 우리가 주목할 개혁정신의 하나가 바로 이 인문주의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인문주의,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가?

  많은 기독교인들은 휴머니즘(humanism)을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이해한다. 휴머니즘이 기독교 교계에서 인간주의나 인본주의 혹은 인간중심주의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종교를 버리고 인간과 이성 중심의 합리적 사고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의 휴머니즘이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기의 휴머니즘은 중세 시대를 넘어 근대로 나아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과 사조로서 ‘인문주의’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인문주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지적인 혁명’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는 인문학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는 교육이념이자, 인문학을 확산시키려는 교육운동이었다. 이 용어는 고대 로마 시대의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한다. 그 단어는 “인간의 품성을 도야하고 함양하는 품위 있는 글과 예술의 힘”을 말한다. 이 고대적 개념이 14~16세기에 다시 등장하여 고전 작품을 통해 지혜와 덕성을 결합한 교양을 함양하려는 인문주의 교육운동을 형성했다. 그래서 이 시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이 부활과 재생이라는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라고 불렀다. 당대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교육이 종교에 초점을 맞추어 추상적인 논리학, 자연철학, 스콜라 철학에 갇혀 있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기’라고 불렀다. 이에 반해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헌과 언어 및 교양과목과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을 강조하는 보편적이고 현세적인 교육운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사상가들의 문헌이 대거 연구되고 보급되었다.

  인문주의는 중세를 극복하고 근대적인 사고와 문화를 형성시킬 지적 토양을 마련했다. 중세사상은 인간 대신에 신, 현세보다 내세를 지향했다. 그리고 인간을 무엇보다 원죄에 따른 죄인으로 바라 보면서 금욕적 고행과 자기 부정적 삶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인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와 개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중심, 개인주의, 이성과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적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현세의 가치를 재발견함으로써 세속적이고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제공했다. 이런 인문주의 정신과 활동이 먼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뒤이어 알프스를 넘어 북서유럽에까지 확산되었다. 이 후자를 일컬어 기독교인문주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던가? 이들이 인간중심적이고 현세지향적인 가치를 중시했고, 현실 기독교에 대해 신랄하고 공격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 자체를 회의하거나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강변했다. “지고의 진리와 진정한 행복 그리고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 나는 분명 키케로나 플라톤을 숭배하는 자가 아닌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북서유럽의 기독교인문주의자들은 신중심의 사고를 전제하면서 이전 중세와 달리 인간을 새롭게 인식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성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인문주의적 학문방법과 사고방식을 활용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올바른 신앙에 입각한 개혁과 기독교 도덕의 회복을 추구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 지식인들이었다.

 

종교개혁의 동력 인문주의 정신

  인문주의 정신의 주요 핵심 중 하나는 비판정신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모토는 “원천으로”(ad fontes!)였다. 고대 문헌에 대한 중세적 해석과 주석을 거부하고 가장 순수한 원형인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기독교인문주의자들은 성경과 초기 기독교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들을 바탕으로 중세적 전통과 교리를 비판하고 재해석했으며, 새로운 사고와 정신을 창출했다. 이처럼 인문주의 정신은 바로 비판정신이자,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안을 탐구하려는 모험과 창조의 정신이었다.

  이러한 비판정신의 활약상을 두 가지 사례에서 살펴보자. 중세 시대에 교황은 한때 전 유럽에 걸쳐 최고의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을 장악했다. 이러한 교황권의 토대를 해체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이 인문주의적 문헌 연구였다. 교황 지상권의 근거 중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진장’이었다. 황제는 로마제국 시기에 공인받지 못한 채 박해 받던 기독교를 공인했고, 각종 특혜를 주며 교회를 후원했다. 그러던 황제가 4세기에 로마 제국을 교황에게 양도한다는 문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서가 8세기에 위조된 것임을 문헌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낸 이가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이로써 마침내 중세 최대의 거짓말이 폭로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의 비판정신은 성경의 원문에까지 이르렀다. 에라스무스는 당대 최고의 기독교인문주의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중세 가톨릭의 표준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의 문제점을 비판했고, 사제들이 독점한 성경 해석권을 부정했다. 그리고 평신도의 역할을 이렇게 역설했다. “교회의 미래가 성경을 아는 평신도들의 등장에 달려 있다.” 그는 그리스어 성경과 대조하여 라틴어 성경의 오역과 오용의 심각성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신학 교리와 교회 전통의 잘못을 비판했다.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는 이렇다. “회개하라.”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외친 첫 일성이다. 그런데 불가타 성경은 이를 “고해하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고해성사’와 면벌의 선행 교리와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물이 바로 면벌부(免罰符)의 오용과 남용이었다. 바로 이 구절을 원문에 따라 바로 잡고, 잘못된 가톨릭의 교리와 전통을 비성경적인 악행이라고 비판한 이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였다. 뒤이어 1517년 10월 루터가 이 논거를 바탕으로 면벌부의 오남용을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작성하였다. 이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맥락과 인문주의적 사상의 토양 위에서 발생했다. 대부분의 종교개혁 지도자들은 인문주의자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울리히 츠빙글리, 필립 멜랑히톤, 장 칼뱅이 그렇다. 그리고 인문주의와 인문정신은 종교개혁의 시작과 과정에서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과 개혁자들이 돌아갈 원천은 바로 성경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등장했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절대적 권위를 가진 기준으로 삼고 당대에 권위를 자랑하던 교황제 성직제도와 이를 바탕으로 세워진 전통과 교리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인문주의적 가치를 근간으로 삼아 전체 신자들의 평등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새로운 신앙 문화를 만들었다.

 

인문정신, 우리 시대의 질문에 답 찾기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히 인문학의 붐을 목도하게 된다. 공공기관과 기업체를 넘어 각종 모임에서 인문학 공부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외적 성장을 지향해왔다면, 이제 사람들이 내적 성숙에 눈을 돌리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개인의 내면적 성숙, 이들 개인들로 이루어진 성숙한 사회로 이르는 길을 찾고 있다.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천지가 개벽할 문명사적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인문학과 인문정신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인문주의적 사유능력과 비판정신이 더없이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요청에 따라 기독교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성찰하고 답할 때이다. 교회는 이제 그동안 집착하던 성장을 넘어 성숙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교회의 여러 쟁점들을 주목해 보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인문주의적 사유능력과 비판적 인문정신이 아닌가 싶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인위적 교리와 권위가 전통과 관행의 이름으로 활개치고 있지는 않은가? 맹목과 맹신과 맹종이 신자공동체를 옥죄고 있지는 않은가? 종교개혁은 바로 성경에 매인 이성과 양심의 이름으로 자아를 발견하고, 권위와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인문주의 운동이 아니었던가? 혹여 비판을 비난으로 오독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종교개혁과 인문주의의 관계에서 확인했듯이 비판정신은 진리탐구의 방법이며, 개혁과 성숙의 매개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해를 보낸 직후 이 인문주의 정신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고재백 교수

총신대학교,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독일 지겐 (Siegen)대학교에서 철학(역사학)박사. 기독인문학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