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인만 바라보는 진돗개처럼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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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인만 바라보는 진돗개처럼

<박종훈 목사_궁산교회>

 

먹을 것과 친구가 없어도

주인과 함께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함

  교회당 입구 쇠창살로 만든 집에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사택에서 문을 열면 주인의 모든 행동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먹이를 주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기척만 나도 귀를 쫑긋 세우며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다 음식이 확인되면 어서 달라며 좋아 죽겠다는 표현으로 꼬리를 흔들며 그 안에서 널뛰기를 한다.

  작업을 위해 마당에서 왔다 가는 중에 어쩌다 한 번씩 쳐다보면 진돗개 역시 나를 빤히 쳐다보며 혹시나 좋은 일이 있을까 기대하며 꼬리를 흔든다. 평상시 한두 번씩 간식도 넣어 주기도 하며 잠시 놀아 주기 위해 문을 열어 주면 송아지가 외양간 밖에 나와 뛰놀듯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이런 행운이 찾아올까 기대하며 주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동물의 본능이지만 주인만을 사모하는 그 모습 속에서 또 다른 주인을 모시고 사는 나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종(從)이지만 엄청난 자유를 주고 마음껏 먹을 것을 선택하도록 공급하시는 주님을 그 얼마나 의식하며 쳐다봤는가? 주인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다가 주인이 조그만 손짓에도 좋아서 펄쩍 뛰며 반응을 보이는 진돗개도 있는데, 나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과 손짓에 얼마나 무디게 반응 했는가를 생각해보니 마치 소가 닭 보듯 했던 것 같다.

  주님이 주인이라고 늘 말로는 시인하면서도 내가 먼저 결정하고 나중에 기도하는 종과 주인의 위치가 뒤바뀐 삶이었음을 인정한다. 개보다 못한 종이라는 책망일까? 아니면 진돗개를 통하여 인자하게 가르치는 주님의 교육일까?

  농한기인 겨울에는 거의 매일 진돗개와 마을 뒷산 산책길을 함께 걷는다. 이 시간은 진돗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산책에 나서기 위해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면 벌써 알아보고 같이 가자는 표시로 ‘낑낑’ 소리를 내며 준비운동을 한다. 생리적인 해결도 이 시간에 하려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밖에 나오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볼일을 본다. 산책을 같이 하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며 마음껏 자유를 누린다. 빨리 달려갔다가 오기도 하고 나의 손을 살짝 물기도 하며 무심코 발로 찬 돌멩이를 기어이 찾아서 물고 오기도 한다. 그동안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워 보며 느끼지만 산책을 싫어하는 개는 하나도 없었다.

  진돗개는 다른 개와 달리 항상 지키는 원칙이 있다.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며 자기 맘대로 멀리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전에 다른 개들은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하고 주인이 한눈판다 싶으면 살그머니 집 근처로 내려가서 말썽을 부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진돗개 역시 마찬가지로 자유의 몸짓을 충분히 하고 싶겠지만 주인과 동행하는 충직함을 보여 준다.

  산책길에 먹을 것이 없고 친구가 없어도 주인과 함께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진돗개를 보면서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나는 주님과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가? 나의 원하는 기도가 응답이 안되고 현실의 여러 문제가 쌓여 있어도 진정 감사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주님이 아시리라 여긴다.

  산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걷기 운동이고, 진돗개와 같이 가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멧돼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천적이 없는 멧돼지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며 개체수가 늘어나서 인가 근처에도 내려오고 있다. 산책을 하면서 늘 감사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숲을 오감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 시간은 묵상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로 가서 지혜를 배우라는 잠언서의 말씀처럼 충성스런 진돗개를 통하여 천지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종의 자세를 배운다. 개가 집 안에 있을 때는 주인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오면 주인만 따르는 진돗개는 친구이며 든든한 경호견이다. 요즘 비싼 사료 값 때문에 개 사육을 주저하는 추세이지만 우리 집 진돗개는 밥값을 충분히 지불하는 녀석이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종일까? 주님과 동행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