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강| 이사야서가 한국교회에 주는 소망_박덕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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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이사야서가 한국교회에 주는 소망

< 박덕준 교수_합신, 구약학 >

 

 

이사야서가 강조하는 소망의 근원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구원과 회복을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셨고 풍성한 열매를 보장하셨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막을 내리고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종교개혁 500 주년을 기념하며 보낸 지난 한 해는 기대도 많았지만 실망도 컸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한 목소리로 종교개혁의 정신 즉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상기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다짐하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들려온 부끄러운 소식들은 과연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는지 회의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는지, 소망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 이사야서를 통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사야서는 제 5의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로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소망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미리 답하자면, 이사야서에서 강조하는 소망은 유다백성의 겸비함과 순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역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이사야 1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시온을 향해 품고 계신 계획을 소개하고 있는 책 전체의 서론입니다. 영(E. J. Young)의 견해에 따르면, 그 계획은 사 1:27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그런데 이 구원의 계획의 대상인 하나님의 백성 시온의 현실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1장에서 소개하는 유다백성의 상태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무지로 인해 소와 나귀보다 못하다고 평가되고, 그들은 패역함으로 인해 “범죄한 나라, 허물 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고 불립니다(1:3-4). 더 나가서 그들은 “소돔의 관원들,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멸망당해 마땅할 존재입니다(1:10). 이러한 상태의 심각성은 유다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까스로 멸망을 모면했다는 사실로 인해 강조됩니다(1:9). 다수의 주석가들이 언급하듯이 그들은 주전 701년의 사건 즉 앗수르 왕 산헤그립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을 뻔했던 위기를 막 경험한 자들입니다(1:8-9; 36-37장 참조).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을 치시지 않았다면 북이스라엘처럼 유다왕국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이들은 여전히 패역한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은 정의와 공의가 결여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1:10-17, 21-2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돌이키지 않는 패역한 유다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1:16-18) 친히 당신의 백성 시온을 정결하게 회복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1:25-27). 물론 그 정결의 과정은 혹독합니다. 마치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순은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시온은 혹독한 심판을 견뎌야 합니다(1:25). 이사야 6:11-13에서 강조하듯, 그 심판은 십분의 일을 남기고도 다시 황폐함을 통해 그루터기만 남기는 철저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긴 “거룩한 씨”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시온을 회복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이사야서가 강조하는 소망의 근원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영원한 언약”을 깨뜨린 패역한 자식들입니다(24:5). 그들은 자신을 더럽힌 “창기”가 되어 남편에게 버림받아 마땅한 아내입니다(1:21; 54: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패역한 자식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리라 약속하십니다(55:3). 또한 그 버림받은 아내를 “큰 긍휼”로 다시 부르시고 “영원한 자비”를 베푸시리라 맹세하십니다(54:4-10). 그에게 “헵시바”,“ ”라는 새 이름을 주시면서 한 때 버림받았던 아내에게 남편의 사랑을 약속하십니다(62:4-5).

   이사야가 말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은 일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조건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회복을 약속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로 그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 원리는 이사야 5장과 27장에 등장하는 포도원의 노래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첫 번째 포도원의 노래는 들포도를 맺는 포도원에 실망한 농부가 그것을 훼파하리라는 다짐을 소개합니다(5:1-7). 훼파된 포도원은 소망이 없습니다. 이 포도원은 스스로 회복할 수도, 들짐승들에게서 포도나무를 지킬 수도 없습니다. 훼파된 포도원에게 소망이 있다면 농부가 그 포도원을 다시 경작하여 회복하고 돌보는 길 뿐입니다. 두 번째 포도원의 노래는 이미 훼파했던 자신의 포도원을 회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리라는 농부의 다짐을 소개합니다(27:2-6). 여기서 농부는 포도원에 항상 (개역개정은 “때때로”) 물을 주고 밤낮으로 포도원을 지켜 누구도 이를 상하지 않게 하리라 단언합니다. 그 결과 포도원의 결실이 온 세상을 채우리라고 약속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언약의 사랑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사랑을 메시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십니다. 한편으로 이사야서의 메시아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 땅에 실현하는 통치자입니다. 이사야서는 유다의 어느 왕도 이상적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비록 히스기야가 부왕 아하스에 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기는 하지만(36-38장) 그는 여전히 유다의 군사력(22:5-11), 애굽과 바벨론과의 동맹을 의지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30:1-7; 39장). 하지만 메시아 왕은 다릅니다. 그는 다윗 언약의 이상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을 대리해 정의와 공의로 통치할 왕입니다(9:5-6; 11:1-5; 32:1-8; 42:1-4).

   이사야서의 메시아는 또한 패역한 백성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중보자입니다. 그는 “속건제물”로 드려져 죄악을 친히 담당하고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여호와의 종”입니다(52:13-53:12). 패역한 백성은 도저히 자신의 죄악을 해결할 능력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더렵혀진 창기 시온은 도저히 스스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남편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종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패역한 백성의 죄악을 해결하시고 더렵혀진 시온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즉 의로운 종의 대속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언약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에서 약속하셨던 구원과 회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메시아로,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께서 또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수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또 부활하셔서 그 안에서 우리로 의롭게 하심을 얻게 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셔서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재림주로 오실 때까지 우리를 붙드시며 우리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이러한 성도들의 삶을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잘 증거합니다. 이사야 5장, 27장과 마찬가지로 농부 되신 하나님은 포도나무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보장하시리라는 은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포도나무가 되시고 우리를 그 포도나무에 연합한 가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와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록 2018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만 바라보면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마땅히 교회의 부패와 패역함을 인해 철저히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은 우리로 절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의 불완전한 모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느냐고 자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가 소망입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교회가 소망인 것은 하나님께서 변치 않고 실패하지 않는 언약의 사랑을 교회에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약속하셨던 시온의 정결과 회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께서 친히 새언약의 시온,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게 하십니다. 성도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포도나무 되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만 하면 그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확신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빌 1:6). 마지막 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세마포를 입은 순결한 신부로 신랑 되신 예수 앞에 서기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박덕준 교수

-서울대 영문학(B.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Div.)(Ph.D.)

-학위논문 : 여호와는 농부 시온은 그의 농원 – 이사야서의 농원은유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