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까치밥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돌담 곁 감나무에 빨갛게 햇빛을 받으며 남아 있는 홍시 몇 알을 바라보니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긴 장대를 가지고 감을 따려고 어찌나 발돋움을 해댔던지 발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장대 끝에 가지가 꺾여 걸려 내려오는 탐스러운 감 덩이를 두 손에 넣으면 마치 인생의 따뜻한 호롱불 하나 받아든 마냥 밝아지고 감격스러웠다.
따는 재미에 푹 빠져 장대질의 사정권 안에 든 감들을 죄다 따려고 기를 쓰지만 우듬지 근처의 몇 개의 감들은 손에 닿지 못할 아스라한 욕망의 좌절을 맛보게 하곤 했다. 우리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은 그 몇 개의 감들을 따지 말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까치나 새들이 먹을 것은 남겨 두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까치밥이었다. 새들이 와서 쪼아 먹도록 인정을 베푸는 것이다.
더러 빨간 감 몇 알씩 남아 있는 감나무가 삭막하지 않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지에 함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산그늘 속에서 노을을 받아 붉은 등을 켠 까치밥. 인생에는 가질 수 없는 것도 있음을 깨우쳐 준다. 더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것의 잉여를 누군가 더 약한 자들을 위해 배려하고 나누는 것이 인간됨의 기본 도리임을 가르쳐 준다.
서리 묻은 채 눈발을 맞이하는 저 까치밥은 추수 때 이삭을 다 베지 말라시며 소외된 자들을 위해 남겨 두게 하신 주님의 불빛 같은 사랑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