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아득하고 그리운 고향의 종소리_이은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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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뜨락 

아득하고 그리운 고향의 종소리

< 이은국 목사_용연교회 > 

 

아득한 예배당 종소리는 하나둘 사라지고,

종탑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느 신도시에 들어서는 예배당 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이다다른 것은 몰라도 붉은 네온 십자가를 설치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입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급기야 교회는 야간을 틈타 기습적으로 그 십자가를 설치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왠지 씁쓰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과연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분명한 것은 어쩌다 교회와 십자가가 빛을 잃어가고 혐오스러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지 두고두고 뼈저리게 반성해 볼 일이다.

   평온한 마을그다지 높지 않은 첨탑 그 꼭대기에 자리한 십자가 하나화려하지도 않고 어떤 빛도 발하지 않는 작고 초라한 십자가였었다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뎅그렁 뎅그렁 예배당 종소리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답게 귓전에 와 닿았던지 언제나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고남녀노소는 물론 부랑아도 걸인도 술 취한 사람마저도 잠시나마 숙연해지고스스럼없이 그 예배당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었다.

   먼동 트기 전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는 보다 낭랑하게 들려왔다단잠에 취한 사람들을 일깨워 일터로 나가는 육신과 마음을 가다듬게 했고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도들에게는 영혼까지도 일깨우는 역할을 넉넉히 담당했었다교회와 주민들은 상부상조하는 가까운 이웃이었고 어떤 거리감도 느낄 수 없었다되돌아 보면 교회와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흠모의 대상이었고 동네사람들은 주저 없이 예배당을 드나들며 함께 봉사하기를 원했고 다 같이 기뻐했다물론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완강함이 있기는 했어도

   고요한 한낮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예배당 마당으로 몰려왔다그 신비스러운 종소리를 손수 울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종탑 주위를 기웃거리며 목적한 거사를 이루기 위해서 틈틈이 노리는 시간이기도 했었다일찌감치 그것을 아는 종지기로서는 아이들의 손에 줄이 쉽게 닿지 않게 되도록 높은 곳에다 종 줄을 꽁꽁 묶어 놓았다이에 질세라 아이들도 작대기나 목마를 동원해서라도 이윽고 묶인 줄을 끌러 한두 번 종소리를 울리고는 잽싸게 도망치기 일쑤였다기어코 한 번은 치고 말겠다는 아이들과 그것을 지키는 종지기 사이에는 날카로운 신경전과 숨바꼭질이 멈출 줄 몰랐다.

   아이들이 종을 치지 못하도록 했던 종지기로서도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기습적으로 종을 치는 과정에서 묵직한 종의 무게에 매달렸다 넘어지는 탓에 크게 다치기도 했고그다지 단단하지 못했던 종 줄은 곧잘 끊어졌다흔히 발생하는 일은 숙련되지 못한 탓에 이리저리 종이 움직이면서 줄을 휘감고 올라가 끼어 버리는 일이다연세 지긋한 여성도들이 주로 맡았던 종지기로서는 종탑에 올라가 끈을 풀어 놓는 일이 난감할 수밖에… 그 때마다 약간은 위험스럽기도 하고 옷에 먼지며 손에 기름 때를 묻혀가며 흔쾌히 종 줄을 풀어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이 내 몫이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날 교회를 돌아보며 지난 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즐겨 수고하며 헌신했던 종지기들을 생각해 본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한시간 종을 울리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두움을 헤치며 숨가쁘게 달려왔던 성도였고어쩌면 목숨처럼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봉사로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했던 성도였다그들은 어쩌다가 놓칠세라 노심초사하며 철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출타도 자제하며 자리 지키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예배당 종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편안함을 전해 주는 데는 숙련된 기술도 따라야 했다그냥 줄 몇 번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니었다언제나 적절한 거리와 세기를 조정해 가며타이밍을 놓치거나 종 줄을 놓아 버려도 안 될 일이니 그 기술 또한 만만찮았다그들은 종을 치는 동안에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종을 다 친 후줄을 꽁꽁 묶어놓은 그 순간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내내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이 종소리를 듣는 이마다 이곳 주님의 품으로 달려오게 하옵소서” 라며.

   모름지기 종지기의 자리가 최고의 봉사직임을 자타가 인정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지기들을 생각할 때 단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비록 자신처럼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지런한 소리는 내지 못했어도너무나 단조롭고 생뚱맞고 어설프기만 했어도돌이켜 보면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당 종 한번 치고 싶어했던 아이들에게 너도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종지기가 되라너도 신실한 주의 종이 되라며 마음껏 종을 쳐 보라 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그토록 아름답고 부드럽게 다가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아득한 예배당 종소리는 어느덧 하나 둘 사라지고작지만 그토록 웅장하고 늠름하게 보였던 종탑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고향마을 나직한 곳에 자리했던 그 초라하고 작은 종탑 십자가가 보다 우러러 보았던 가장 큰 능력의 십자가였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