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마지막 전화_강승대 목사

0
68

살아가며 섬기며> 

마지막 전화

< 강승대 목사, 합포교회 >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준

주일학교 선생님이 생각 나

몇 년 전 모처에 설교를 하려고 나가려는 참에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통화인 듯해서 그냥 집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통화를 한 후 아내는 나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온 상대방의 목소리는 낮았습니다. 상대는 자신을 통영 해양 경찰서 김 아무개 경사라고 하였습니다. 하도 사기 전화가 많은 세태라 애써 신분을 확인해 보니 틀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마치 죄를 지은 범인을 취조하듯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습니다.

“김O영씨를 아십니까?”

이름을 듣고 보니 옛날 아내의 주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어떤 관계입니까?”라고 다그치는 태도에 기분이 나빠서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질문하십니까?”하고 했더니 “김O영씨가 5월 달에 통영 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김O영”

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해운동에서 만났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내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만나면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길에서 만난 아이가 ‘김O영’이었습니다. 아내는 토요일마다 집으로 심방가고 주일 아침이면 데리러 가서 초등 6학년까지 교회를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갈 때쯤 사춘기가 되어 신체적 변화가 찾아와서 갑자기 살이 많이 쪘습니다. 그 아이는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밤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심방가면 “교회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주 “자살하면 왜 안 되나요?”하며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아내는 신앙적으로 권면을 많이 했고 오랫동안 심방을 갔지만 결국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혔고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쯤에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우리를 만나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는 척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월영동으로 이사를 와서 더 이상 그 아이를 만나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해 봄 어느 날 거리에서 아내와 함께 길을 걷는데 뜻밖에 그 아이와 마주쳤습니다. “O영아” 이름을 불렀더니 우리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였습니다. 대학은 통영에 서 다니다가 휴학하였다고 했습니다. 폰 번호를 서로 주고받고 다음날 문자를 몇 통 보내었더니 그 주일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내와 나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잃어버린 어린양을 다시 찾은 목자의 심정이었습니다. ‘O영’이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보고 놀라워하며 좋아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도 교회를 나왔습니다. 아내는 일부러 아이를 만나 밥을 사 주고 곧바로 소그룹 또래들의 모임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1-2주 교회에 나오더니 그 다음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주말마다 아내와 나는 생각이 날 때 연락을 취하였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통영 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온 것입니다.

형사가 우리 부부를 전화로 조사한 이유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랍니다. 그것도 새벽 2시 30분 경에…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인 줄도 모르고 저는 몇 번이나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휴대폰을 잘 사용하지 못해 낮에도 통화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나의 아내였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에 10여 년 동안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준 주일학교 선생님이 생각이 났던가 봅니다.

형사와의 전화를 끊고 우리는 그 새벽 2시 경에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많이 자책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그 후로는 밤마다 혹시 휴대폰이 진동으로 되어 있는지, 배터리는 충전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