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11)| 예수님 기념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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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11)

예수님 기념

고린도전서 11:23-26

< 정창균 목사,  합신 총장,  남포교회 협동목사 >

주님의 고난을 기억함은 죄의 참담함, 그 죄에서 해방됨,

그리고 종말론적 소망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

또 다시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보며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하곤 합니다.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고 멸시당하고 뺨을 맞으며 조롱당하는 주님. 그리고 잔인한 모습으로 고통의 극치를 경험하며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 얼마나 고통이 크셨을까, 얼마나 괴롭고 힘이 드셨을까, 얼마나 모욕적이고, 외로우셨을까. 그렇게 반응하는 근저에는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동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불쌍하고 안됐다는 감정에 압도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판이하게 다른 차원에서입니다. 고난주간에 행하는 성찬식은 교회가 예수님의 고난을 집중적으로 기억하는 대표적인 의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성찬식을 행해야 하는 근거를 예수님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성찬식의 본질적 의미와 기능은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두 번씩이나 확언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한 추억이거나, 혹은 추모가 아닙니다. 성찬식은 예수님 추모예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예수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 죄의 참담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불쌍한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우리 죄의 끔찍함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혹독하게 다루는 병정들이나 그들에게 예수님을 내어준 빌라도나 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에 대한 분노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하지 말자는 도덕적 교훈도 아닙니다. 주님이 당하는 혹독하고 참담한 고난을 떠올리면서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저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죽게 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저렇게 죽여야만 그 값이 치러질 만큼 참담한 나의 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내 죄가 끔찍해서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이 갖는 두 번째 중대한 사실은 그 끔찍하고 참혹한 내 죄가 주님의 저 고통과 죽음 때문에 값이 치러지고 그 죄의 참혹함으로부터 해방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죄에서 풀려났다! 용서 받은 자가 되었다. 이제 해결이 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난을 보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언제나 양면성을 갖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죽게 만든 내 죄의 참혹함에서 오는 슬픔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 끔찍한 내 죄가 해결되었다는 희열과 기쁨입니다. 이런 점에서 수난일의 성찬식에 참여하는 공동체의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엄숙하고 어두운 추모예배의 모습일 수 없습니다. 성찬식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검은 양복을 입거나 엄숙한 표정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내 죄를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내 죄가 저렇게 해결된 것을 생각하면 기뻐 뛰며 감사할 일이기도 합니다.

찢긴 몸과 흘린 피로 상징되는 그 주님을 우리가 기념한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모든 신자에게 이루어놓으신 미래에 대한 공동체적 소망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친히 베푸시는 상에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떡을 떼며 먹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사실은 그 소망을 갖고 함께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 있는 신앙공동체의 종말론적 소망과 고백입니다. 온 교인이 참석하는 성찬식은 이 사실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은 신앙공동체에 속한 교인들에게는 큰 격려와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사실을 함께 기억하고 그 주님을 기념하는 현장에서는 언제나 서로를 향한 격려와 축복과 소망을 확인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한 신앙공동체의 지체가 되어 같은 종말론적 소망을 갖고 살게 된 것을 확인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