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_박동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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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근 목사, 강변교회 교육목사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순종이 보상받을 자격 아니다”

은혜언약 안에서의 조건성은 구원을 받는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의 선행과 범죄가 영원한 형벌이나 영원한 생명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죄로 인한 무능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행위언약 하에서, 즉 그리스도의 은혜언약 밖에서 모두 정죄된다. 이런 이유에서 율법의 본질은 행위언약에서의 “행위의 법”이나 은혜언약에서의 “그리스도의 법”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시행과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행위언약의 형식은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이지만, 은혜언약은 “살라 그리고 행하라”이다.

행위의 법은 그리스도 밖에서 창조자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전달되었지만,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에 의해 전달 되었다.

행위언약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자로서 그들을 대하시므로 그들의 죄성으로 인해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없으므로 항상 정죄 가운데 빠져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은혜언약 안에서 행위언약의 의무와 정죄는 성도에게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해 본질이 동일한 율법은 은혜언약 안에서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법”으로 적용된다. 곧 택함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하여 성령의 능력 부여하심을 통해, 또한 감사의 표현으로써, 칭의의 열매로써 선행을 추구할 능력을 부여 받는다.

그러나 성도라 할지라도 역시 죄성으로 인해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부성애적인 관대하심(toleration)으로 성도의 불완전한 행위를 완전한 것처럼 받아주신다. 이처럼 율법이 은혜언약으로 주어질 때, 그리스도의 법은 구원을 위해 요구되지 않는다.

반면에 구원을 위해 선행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 아니며 행위언약에 머문다고 볼 수 있다. 율법이 그리스도의 법이 될 때, 그것은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성도는 행위언약에 대해, 행위의 법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행위언약일 때, 그리고 구원의 조건이 될 때, 성도는 행위의 법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정죄도 약속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일 때, 성도는 은혜 안에서 그 법의 순종을 추구해야 한다.

행위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은 동일하게 조건과 약속 그리고 위협의 요소를 갖는데, 역시 그 차이점이 존재한다. 행위언약일 때 행위의 법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제시되며 지키면 영생을, 어기면 저주와 사망으로 위협한다. 그러나 은혜언약일 때 그리스도의 법은 역시 순종을 요구하지만, 그것에 불순종한 것에 대해 사망과 영원한 형벌의 위협이나 영생의 약속을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법에서 보상의 약속은 순종할 때 영적, 현세적 복과 신앙의 성장이 보장되지만, 그 법을 불순종할 때, 영원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닌 그를 교정하기 위한 징계가 내려진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의 친근하고 달콤한 교제의 결핍과 영적이고 현세적인 괴로움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위협의 내용으로써 징계도 본질적으로 사랑하는 자녀를 교정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부성애적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에 있어 보상과 약속은 은혜 위에 은혜가 덧붙여진 것으로서의 선물이다. 우리의 행위가 불완전하므로,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순종은 당연한 처사이기에 아무도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법에 대한 순종에 복의 약속을 더하신다. 따라서 은혜언약 안에 있는 택자들은 행위언약의 약속이나 위협으로부터 자유하다.

요약하자면 선행의 지침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적용할 때와 행위언약일 때와 행위의 법과 은혜언약일 때에 따라 그리스도의 법을 구분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한 율법이 이처럼 그 형식과 시행에 있어 구분됨을 인지하여 율법을 성도에게 행위언약일 때의 좁은 의미의 율법일 때와 구분해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은혜와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주심을 통해 믿음과 사랑 그리고 감사의 동기로 불완전한 행위이지만, 선행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그의 칭의의 은혜를 근거로 하여 부성애적 관대하심으로 성도의 행위를 의롭다하시며 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가운데 율법은 선행의 길을 지시하는 푯대가 되며, 삶의 규범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도에게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아울러 율법이 영원한 형벌의 위협으로 성도를 괴롭힐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