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우리나라의 강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봄을 맞는 강은 얼부풀었다가 방금 녹은 아기의 볼처럼 발그레하다. 겨우내 숨죽인 몸을 천천히 이끌고 남은 눈송이를 털어내며 둔중한 산을 부드럽게 돌아 나오는 강. 어두운 엄동의 곡절을 안고 햇발 가득한 아침을 기다려 이윽고 뜨거운 입김 버무린 노을로 끓어오르는 강은 우리의 역사를 닮았다.
먼 마을 가까운 이웃을 아우르며 여린 갈대 뿌리 하나 쉽게 범한 일 없이 살갑게 흘러 얼음 녹이는 꽃바람의 고향에 그윽이 닿는 강. 우리나라의 강은 매몰차거나 거칠지 않고 저리도 순하게 흐른다.
너무 전투적이지 못하다며 자괴감에 허우적이는 사람들은 우리 역사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해 하지만 결국 끈질긴 생명력으로 숱한 도전을 이겨내고 길고 추운 밤의 꿈을 이루고 마는 것은 말없이 따뜻하고 착한 그 성품이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는 늘 약한 듯해도 끊이지 않고 마침내 산천을 적시는 참된 승리의 본류가 되고 만다.
한 가정을 지켜 내고 고을을 빛내고 나라와 세계를 장엄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완력이나 돈이나 명예나 지식으로 자랑하는 일순간의 포말과도 같은 거친 위세가 아니다. 온 들판을 헤집고 여러 마을을 집어삼켜 모두에게 상처를 주면서 제 앞만 생각하고 짓달리는 살벌한 물살은 불화와 죽음과 슬픔을 낳을 뿐이다. 그건 우리의 강, 우리의 역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 작지만 마음 깊은 우리나라의 강은 얼마나 굳센지 일제강점의 고난을 뚫고 지극한 나라사랑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믿음의 선조들의 청청한 가슴을 닮았다. 우리나라의 강은 서글픈 변란의 큰 산굽이를 만나 멈칫, 눈물짓기도 하지만 다시 숨 한 번 고르고는 이내 미소를 찾아 도란도란 오래 흐른다. 보라, 큰 바다로 멀리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