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9>| 너에게 칭의를 주어 네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신다_김근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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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칭의를 주어 네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신다

-갈라디아서 2장 14-21절    

< 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

 

“피조물은 단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처럼 살아야”  

 

  1. 들머리(발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냈다. 나는 (이제 그리고 다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민15:41, 출20:2 등등).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하셨는가를 묻기 전에 이스라엘이 이 일을 원했는가를 물어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애굽 해방 직후 홍해에서부터(신앙 시작) 광야에까지(신앙 과정) 줄곧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줄곧 ‘애굽에 무덤이 없어서 이곳 광야에서 ‘적들에게 또는 목마르게 해서 또는 배고프게 해서 또는 하나님 분노로’ 죽이느냐?’고 불평했다.

 

  1. 주제(전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말하길 “지금 내가 육체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 때문입니다. 이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갈2:20)라고, 모세가 광야 이스라엘에게 자주 말하고 싶었을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다른 이유와 목적(애굽에 있을 때보다 더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16:13-14)을 갖고 육체로 사는 것(교회에 나가는 것)이라면, 광야를 걷는 내내 원망과 불평을 가진 이스라엘처럼 우리 영혼에는 하나님의 참 은혜를 치웠고(set aside)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참 희생을 헛되게(for nothing) 했다고 하는 바울의 말(갈2:21)을 듣게 될 것이다.

 

  1. 전개(위기)

 

   정말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갈2:20)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면서 죄인처럼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롬6:2)라고 말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따라,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움으로 죄 된 인생을 해체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죄 된 인생을 해체하고 그리스도를 내 안에 살게 하려 할까(그래야 한다고 깨닫게 됐을까)? 현실(영혼 상태)은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고 힘들고 지쳐가고 있는데 말이다. 즉 내 마음은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데. 물론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하나님 사랑)에 만족하는 대신 에어컨과 온풍기(애굽문명)도 함께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이런 상태가 아니니 빼고 말이다.

 

  1. 증거(절정)

 

   당신, 새로워진 본질(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로 칭의를 얻고 성화를 걷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 기쁜가? 즉 하나님께서 내 하나님이 되셨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내 주님이 된 것이 그렇게 좋은가? 이것이 좋아서 더 좋아지도록 물질문명이나 자기성질을 애굽에 놔두고 광야에서 그렇게 팍팍하게 사는가?

   그렇다고 피조물의 이런 태도가 창조주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을까? 죄인이 의인처럼 완전히 변화해서 따라갈 수 있을까? 자식이 부모의 의중대로 완벽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최소한, 어쩌면 최대한일지 모르지만, 피조물은 단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처럼만 살면 될 것 같다.

   죄인은 단지 ‘오직 은혜로’ 의인의 모양만이라도 내면 될 것 같다. 자식은 부모가 준 생명만이라도 아끼고 유지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신은 ‘거의 매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1. 마무리(결말)

 

   하나님께서 너(잃어버린 죄인 그러나 아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 자신, 어쩌면 그것을 넘어서는 희생, 하나님 아들을 주셨다는 사랑을 깨닫고 너희들 마음에 받아주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괜찮다, 그 정도로라도 올바르다) 하신단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조금이라도) 잘 지켜주는, 원망이나 불평불만 없이 그리고 물질문명 욕심이나 자기성질 냄 없이 하나님 아버지와 늘 교회(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살았던 그 큰아들(눅15:31)이 몰랐던 것을 알면서 즐겁게(웨민소요리 제1문답) 살지 않을까.

   율법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나를 죽일 듯이 내 마음을 지배하려 하고(롬7:1), 그러면서 율법은 내가 죄를 죄로 악을 악으로 깨닫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롬7:7), 그래서 율법은 나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롬7:10).

   이런 삶의 광야가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아 성령을 따라 살면서(롬8:4,14) ‘하나님께서 내 하나님이심’을 아주 조금 알아가는 고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