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낙심하지 않아야 할 이유
이땅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이 부딪치는 삶의 나락, 그것은 사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삶의 투쟁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무언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을 온 몸으로 부대끼면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누구나 죄악에 빠진 인간이 느껴야 하는 비참함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낙심은 우리 인생의 종착점은 아니다. 삶의 비참이 극대에 이르든 이르지 않든 신자들에게는 언제나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심한 종교적인 박해가 있던 시절에 신자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는 것에 대해 1559년에서 1576년 사이에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완전히 치러 주셨고, 마귀의 모든 권세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나의 머리털 하나도 떨어질 수 없게 하시는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일이 나의 구원을 위하여 합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시며, 나를 전심으로 기꺼이, 그리고 이제부터 곧바로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결국 사람이 이땅에 태어나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할 때에는 극심한 자기 비하에 따른 비참한 인생을 살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나라와 사회가 오로지 힘의 철학에 따라 부익부, 빈익부의 길로 치닫게 될 때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진 사람들은 더욱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면, 그리고 “나를 전심으로 기꺼이, 그리고 이제부터 곧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가 당하는 비참한 현실은 삶의 낙망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빠질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