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역사에 대한 판단과 교회의 자세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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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판단과 교회의 자세

<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

 

“교회는 진리를 따라 역사의 의미와 가치 밝혀야 할 의무 있어”

 

   칼빈은 이방의 저자들이 ‘역사는 인생의 교사이다’라고 말한 것을 옳다고 설명한다.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교훈을 배워, 자신의 삶을 돌이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과 의미가 드러나야 한다. 최소한의 객관성과 사실로부터 분리된 역사는 사람의 생각을 무지와 오류로 인도하여 방종과 부패에 이르게 할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도 문제가 있다. 역사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많은 내용들은 지배자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상대적으로 수많은 민초들의 삶은 그들을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반대로 역사가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담아낸다고 해도 그 자체로 역사의 많은 사실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초들의 삶이라는 것이 대부분 역사의 주류를 담아내는 것에는 취약할 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지배자들의 정치 행위로서의 역사와는 그 영향력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역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세상에 인간들의 욕망과 죄악됨이 펼쳐지고 그것이 어우러진 현실을 나름대로의 학문적 작업을 통해 객관화 한 것일 뿐이다. 때문에 객관화 할 내용도 대부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정해지고, 그에 의해 다뤄질 소스를 선택하는 일이 정해진다. 이 때 객관화를 주장하는 주체가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역사가 추구하는 객관성 자체가 이미 중립적 성격을 떠난 다는 한계를 갖는다.

   결국 역사 자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분 자신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는 길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고작 해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학문적 필요에 의해 교훈을 찾아 현재 세상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대안과 지혜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래서 칼빈은 역사의 의미와 가치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에(이방인 저자) 의해 기록되어 전해 내려 온 바와 같이 그 역사에서 건전한 발전을 이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만이 이러한 종류의 기능을 해낸다. 먼저 성경은 우리가 모든 다른 역사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일반 법칙을 규정해 놓는다. 그렇게 해서 그 역사가 우리에게 유익을 주도록 만든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행동과 피해야 할 행동을 분명하게 구분해 준다. 그러나 교리에 관한 한 – 그것은 성경의 특별한 분야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 그의 백성들을 향한 그의 의와 선하심, 그리고 약한 자들에 대한 그의 심판들을 우리에게 유일하게 밝혀 주고 있다.”

   칼빈은 인간 역사 그 자체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설명한다. 오직 성경만이 인간에게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하고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는 죄악된 본성과 부패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그 결과들인 물질적 발전이나 어떠한 편리성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은 오히려 역사를 시험할 수 있는 일반 법칙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인간의 역사적 객관성과 그로부터 나온 모든 발전은 판단을 받고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사라지는 현실을 고스란히 판단하게 된다. 실제로 인간 역사가 비춰주고 제공한 모든 편리성은 인간 자체에 의해 거부되거나 제거되고 결국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한계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교리들을 떠나서 역사의 유익들을 누릴 수 없다는 칼빈의 말은 참되다. 성경이야 말로 인간의 얄팍한 편리성과 객관성에 의존하는 본성과 욕망을 하나님의 진리 관점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따라 인간이 아무리 작은 현실로서 역사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이 세상이 감히 산출할 수 없는 객관성을 가진 것이며, 형용할 수 없는 발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해 성도는 인간 자체의 궁극의 발전인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적 속성과 분리됨 없는 뜻을 따라 자신의 행동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탁월한 발전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의 객관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교리의 지도를 받지 않는 순간 인생의 교사가 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참된 진리를 따라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밝혀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일에 충성되지 못한 교회는 그 자체로 진리를 사용하는 은총을 성령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사실상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것이 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칼빈의 설명을 인용하겠다. “만일 성경의 역사들을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에서 건전한 교리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참된 교회는 역사의 객관을 앞세워 하나님의 진리들을 넘어서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이 산출할 수 없다는 점을 겸손히 인정하고, 모든 역사들 위에 하나님의 진리를 드높여 드러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