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 <5>| 천국복음을 확신하는 달음박질 비결_김근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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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을 확신하는 달음박질 비결

– 갈라디아서 2장 1-10절

< 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

“성도는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사람들이어야”  

 

 

  1. 들머리(발단)

 

   1960년대 소설가 최인훈 <광장>은 남한의 자유주의 유토피아 ‘코케인(Cockaygne)’과 북한의 사회주의 유토피아 ‘아르카디아(Arcadia)’가 모두 실패했다고 고발한다.

   자유주의 유토피아는 결국 부도덕한 짓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어두운 개인 밀실(사생활)을 낳게 하고(유토피아를 위한 개인들의 연대광장은 없다), 사회주의 유토피아 또한, 결국은 집단의 이념을 위해 개인의 모든 자유의식을 막는 잿빛 광장(숙청)만을 낳게 한다(유토피아를 위해 개인들의 밀실을 없앴다).

   그 결과 자유주의 ’코케인’은 무한한 물질적 풍요와 끝없는 쾌락을 즐기려는 ‘가진 자들만’의 밀실 천국을 꿈꾸게 되었고, 사회주의 ‘아르카디아’는 인간의 욕망을 공산당 아래 묶어두고 노동을 통해 분배와 평등을 실현시키려는 ‘그들 집단만’을 위한 광장을 꿈꾸게 되었다.

 

  1. 주제(전개)

 

   이런 유토피아(이상사회)는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각자 시작한다고 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어원 자체가 그걸 벌써 암시했다. 유토피아는 ‘U’ + ‘topia’이다. ‘U’는 좋다(eu), 없다(ou)를, ‘topia’는 장소를 뜻한다. 좋은 곳이지만 세상엔 없는 곳, 이 땅에 존재해 본 적이 없지만 좋은 곳, 즉 유토피아는 ‘가상의 섬’일 뿐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복음(하나님나라)을 알리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이 천국복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갔을 때에 받은 자유’를 마음에서 꼭 붙잡았다(2:4).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늘나라를 확신했을까? 왜 그렇게 열심히 달음박질을 했을까?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유토피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상의 장소’ 하나를 만들어놓고 개인천국과 집단천국을 꿈꿨다. 사도 바울도 그런 것인가?

 

 

  1. 전개(위기)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꾸는 꿈은 무엇이며 어디서 이룰까? 답은 ‘하나님나라(천국)’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향해서 가는 사람은 저 하늘에서 하나님나라에 있다. 그래서인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0장 “기독교 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런가 보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차츰 가까워지는 걸음걸이가 마냥 좋은 사람들이다. 제20장은 구약 백성보다 신약 자녀가 훨씬 더, 뛸 듯이 미칠 듯이 기뻐할 거라 고백한다. 왜냐하면 “제 두 눈이 (직접)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눅2:30)라고 말한 시므온 같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므온 같으려면 시므온처럼, 성령에 이끌려야 한다(눅2:27, 갈3:2).

 

 

  1. 증거(절정)

 

   성령에 이끌려 마음에서 생수의 강(요7:38, 성령과 말씀)이 넘치면, ‘그리스도를 알아 본다’.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거짓(false)들은 이걸 혼란하도록 유혹했다. 그리스도께서 이룬 하늘 길을 유토피아 섬으로 돌리려고 했다(3:3). 이 땅에는 없지만 행복(물질적 유토피아)이 가득한 섬. 구원 받을 수 없지만 의(정신적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는 종교. 성령은 없지만 말씀에 은혜 받을 수 있는(미신적 유토피아) 교회.

 

 

  1. 마무리(결말)

 

   하늘나라와 유토피아, 이 둘의 구분은 사실상 힘들다. 구별하자면, ‘나(개인)와 가족(집단)’을 위한 꿈(섬)이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꿈(하늘)이냐 이다.

   사도 바울은 이 땅 유토피아 유혹에 맞서 평생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다(딤후4:7) 한다. 이런 믿음은 성령을 따라 사는 동안 육체의 욕망(유토피아)을 채우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갈5:16)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제라도 자기 육체를, 그 육체의 정욕과 욕망(코케인과 아르카디아)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경주를 시작한다면, 차츰 하늘나라를 두 눈으로 보고 확신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