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이 무섭다_김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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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이 무섭다

<김성진 목사, 늘소망교회>

 

교회는 어수룩함을 변명하지 말고 약삭빠름을 자랑하지 않아야

 

 

오래되고 익숙한 것은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면 괜히 대단하게 생각된다. 불신자나 이교도였던 사람이 기독교를 만나고 이제야 진리를 발견했다고 회심한다. 그러나 반대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다가 다른 종교를 접하고는 드디어 바른 길을 찾았다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실컷 놀다가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고 세상 맛, 돈 맛 모르고 오직 교회 안에서 지내온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들한 것이 다른 이에겐 새롭고 굉장하다. 누구에게는 굉장한 것이 굉장하게 안 느껴진다. 귀한 것 속에 귀한 줄 모르고 지내는 이들이 많다.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에 침투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오래전부터 들린다. 그리스 철학도, 로마의 무력도 견뎌냈던 교회가 현대화의 맛을 보더니 맥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 기계화를 통해 주어진 쾌락과 부와 자유를 경험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모양이다.

나이 든 할머니 교인이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인데…” 하며 억울하고 부러워 한숨 쉴 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가슴이 막힌다. 과연 현대화는 신대륙을 발견하였는가? 그동안 몰랐던 세상의 가치와 즐거움과 능력을 찾아냈는가?

자유주의는 신대륙 발견에 환호한다. 새롭게 발견한 세상의 지식과 기술과 능력, 인간의 가치와 잠재력과 자율성을 만끽하라고 한다. 역사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것은 죄악이고, 새로운 것을 빨리 쫓아가는 것만이 지혜로운 삶이며, 교회도 이 세상의 앞선 문명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과 방식의 변화를 꾀하지 않는 교회는, 된장 냄새 나는 마누라 밖에는 세상에 여자가 없는 줄 아는 사람처럼 한심한 모양이다.

근본주의는 정도를 잘 지키는 것 같다. 그런데 근본주의적 성격을 가졌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꼭 그렇진 않은가보다. 그저 세상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은 아닐지. 세상과 맞닥뜨려 성숙하고 견고한 판단을 해왔는지 의심스럽다. 접촉이 없고 유혹이 없어서 유지되었던 것은 아닌가싶다.

잠언 7장에는 어린 소년이 간교한 기생에게 유혹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한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닳고 닳은 기생에게 어린 소년이 어찌 넘어가지 않으랴.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어리석음이 문제다. 어수룩하고 물정을 모르면, 유혹이 다행히 멀리 있을 때에만 안전할 뿐이다. 순진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빠지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늦바람은 무서운 법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재미와 요령에 먼저 눈떴다고 똑똑한 줄 알고 재는 것도 어리석다. 먼저 바람이 난 것뿐이니 순진하고 어수룩하긴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에 기생의 호림을 당한 어리석은 소년을 보라.

진짜 지혜로운 이의 말을 들어보자.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전도서 기자는 세상을 알았다. 그리고 선언한다. “헛되도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를 두신 세상,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주께서 심판하고 회복하실 세상, 우리는 그 세상을 살아야 한다. 어수룩함을 변명하지 말고 약삭빠름을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이미 바람이 났는가? 아니면 아직까지는 다행히 유혹하는 이를 못 만나서 조강지처와 아슬아슬한 동거를 유지하고 있을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