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교회? 작은 교회?”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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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 작은 교회?”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교회에 회중의 숫자가 많고, 돈이 많아도 참된 신앙고백과 교회 정치와 예배 모범을 따라 성도들이 목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오히려 위험한 상태일 뿐

 

 

교회는 일반적으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나눠진다. 장소적으로는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로 구별된다. 특별히 지상에 속한 보이는 교회는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로 구별된다.

이 때 형식적으로 교회의 표지인 성례와 말씀과 기도와 권징을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면 최소한 가시적으로 참된 교회라고 인정한다.

우리 헌법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한다. “교회는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높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신령한 나라요, 은혜와 진리를 영원히 나타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인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성도들로 구성된 거룩한 단체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분리됨이 없는 은혜로 세워진다는 사실이다. 둘째, 교회는 현재적 개념에 묶여 있지 않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 거룩한 모임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교회를 대할 때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정해준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지배할 수 없고, 오직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이 다스리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신 자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직 그의 명령과 방식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인간의 경영학적 방법이나 처세술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세우신 자의 뜻에 합당하길 애써야 할 뿐이다.

또 교회는 예정론적 개념이 지배하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교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이것은 오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정론적 질서를 따라 이전에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신앙과 동일한 신앙을 주께 받은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이후에 나타날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주님께서 동일하게 베푸실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헌법은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은 교회를 설명할 때 “하나님만 아시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선민 전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그 유지(維持)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에 기초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것은 교회가 철저하게 예정론의 실천적 의미가 구현되는 곳임을 가르쳐 준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에 대해 사용되는 구별들은 매우 위험한 것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작은 교회, 큰 교회의 구별이다. 최근에 물질주의적 교회관이 팽배해지면서 교회를 크고 작음으로 구별하는 일이 많다.

이런 구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직 회집하는 성도의 숫자와 그에 따른 교회의 재정 규모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구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세우신 자로 계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영원하신 뜻을 모조리 삭제하고 우리의 물질적 기준으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기본적으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엡 1:23)이라는 실질적 은총 아래 놓여 있다. 이것은 교회가 질량적으로 판단 받거나 다뤄질 수 없는 중요한 기초이다.

실제로 이것은 성경의 수많은 서신에서 교회를 언급할 때 모두 주님의 것으로 증거할 뿐 질량적 판단으로 작은 교회, 큰 교회의 구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참된 교회는 큰 교회나 작은 교회의 구분이 아닌 어떤 다른 구분이 가능할까? 장로교 정치원리를 따라 조직 교회와 미조직 교회로 구별이 가능하다. 이것은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라는 항존직을 수행할 직원이 교회에 있는지 유무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교회에 모두 있으면 조직 교회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조직 교회인 것이다.

사실 주님의 참된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의 참된 치리를 온전히 받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최소한 합법적으로 세워진 목사에 의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면 모든 말씀의 왕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치리 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적인 조직 면에서 볼 때, 미조직 상태인 것이다. 그 외형적 표식으로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주님의 말씀과 그에 준거한 참된 신앙고백으로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교회정치와 예배 모범에 따라 합당하게 주님의 성도들을 섬기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미조직 교회인 것일 뿐이다.

반대로 성도가 많고, 돈이 많아도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없고, 목사가 홀로 교회를 치리하는 임시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자체가 미조직 상태인 것이다.

미조직이라는 것도 어떤 교회가 외형적 부실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외형적으로 주님께서 교회에 합당한 사역자를 주시지 않은 것으로 아직 진리에 합당한 체계와 질서를 갖지 못한 것을 말한다. 합당한 사역자가 없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진리의 모범을 따라 앞선 자를 주님께 선물로 받지 못한 것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이것은 사역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과 교회 정치 및 예배 모범”따라 교회를 잘 치리하는 것을 전재한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어도 이들이 자신들이 선서한 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과 교회 정치 및 예배 모범”을 성경에 총괄한 교훈으로 알고 신종하겠다고 한 것을 어긴다면, 이 자체가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과 주님께서 명하신 직무가 분리된 이격현상이 교회 안에 발생한 것일 뿐이다.

직분은 가졌으나, 그 직무를 수행할 내용이 없고,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일하고 있다면 조직 교회 역시 외형적 형식만 갖춘 것일 뿐 복음 진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다. 결국 교회의 조직과 미조직의 구별도 그 외형적 형태의 기초를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분리됨이 없는 복음 진리로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구별하여 말할 때 외형적으로 크냐, 작냐를 기준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성도의 수가 적고, 재정이 열악해도 참된 신앙고백에 기초해서 주님의 치리가 합당하게 행사되고 있다면 참된 교회로서 그 자체가 복된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교회에 회중의 숫자가 많고, 돈이 많아도 참된 신앙고백과 교회 정치와 예배 모범을 따라 성도들이 목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오히려 위험한 상태로 봐야 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작은 교회와 큰 교회를 구별하는 언어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언어 방식은 교회를 물량적으로만 자라게 만들어가려는 의도가 본의 아니게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사용되는 현대의 언어의 특징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은 교회의 품위와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될 뿐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증거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는 어떤 교회가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됨이 없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다면 이미 우주적 성격을 가졌음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이런 역사를 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고후 13:8)이라고 가르치신 내용을 따라 모든 교회로 하여금 진리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