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_전상일 목사

0
340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전상일 목사, 석광교회>

 

누가 보더라도 맛과 멋이 어울러 지고, 속이 꽉 찬 교회 되길

 

 

종로구 삼청동에 가면 이름이 독특한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이라고 하는데, 단팥죽을 전문으로 하는 집입니다. 

 

이 맛집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밤 9시면 문을 닫는 데, 갈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4월 19일 문을 연 이래, 그 자리에서 단일 메뉴인 팥죽으로 40년을 이어왔고, 그것도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삼청동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집이 되었으니 성공한 맛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칭찬한 것을 보면서 역시 ‘맛 집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대에 달랑 나온 팥죽 한 그릇이 뭐가 다르겠나 싶다가도, 막상 음식을 접하는 순간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 수밖에 없습니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팥을 곱게 갈아서 오랜 시간 끓인 팥죽 위에 계피가루와 은행, 찐 밤, 팥 알갱이로 고명을 올린 음식은 누가 봐도 맛깔나고 정성까지 담겨 있으니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집을 여러 번 드나들면서 상호에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해도 괜찮을 텐데, ‘왜 두 번째 맛있는 집’이라고 정했을까?” 사람들의 의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도 하고, 장사 전략의 일환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고, 팥죽집 사장님의 어머니가 첫째이고, 가업을 이은 자신은 둘째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분명한 것은 이 집이야 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첫째라는 것입니다. 이 집을 다녀 온 후로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는 것은 그 맛과 멋이 단연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유명하다는 맛집의 경우 겉은 화려하고 구미는 당기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겉(유명세)과 속(내용)이 같았습니다.

근처 주변에는 여전히 ‘원조’라는 간판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려는 맛 집들이 많았지만, 고객들의 마음을 쉬 훔쳐가는 집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집에 자꾸 내 마음이 베임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삼청동의 이 팥죽집,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을 갈 때마다 마음이 자꾸 끌리고, 뭔가 여운이 남는 것을 애써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단이 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두 번째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맛과 멋이 어울러 지고, 속이 꽉 찼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접하는 교회 홍보물과 주보 겉면에 새겨진 교회소개를 보면 마치 우리들의 교회는 완벽한 듯 보입니다. ‘3대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 ‘가고 싶은 교회, 머물고 싶은 교회, 자랑하고 싶은 교회’,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교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하는 교회’ 등등. 그렇다고 이런 표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저 또한 유사한 표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겉에서 보는 것처럼 그 내용까지도 감동과 여운을 주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다른 교단이나 교회에 비해서 연약해 보일지라도, 교회 프로그램이나 행사들이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되고 사람 살리는 일들이 계속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분은 교단에 대한 자부심이 지대한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 목회가 개혁주의의 선봉에 서있다고 늘 말합니다. 교회설립과정, 설교연구방법과 전달방식, 본문과 찬송가 선택, 목회방향설정에 대해서 늘 첫째라고 말합니다.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도 다른 스타일의 목회를 쿨(Cool) 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본인이 언제나 정답이며 첫째라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물론 우리는 어느 장로회 교단보다도 그 정체성이나 정통성에 있어서 단연 최고이며 둘째가라면 서러운, 단연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보루(堡壘)입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 좀 들어간 채로 신학교도 다녔고, 개혁교회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교회들의 모습과 목회자들의 현장을 보면, 이것은 순전히 우리들만의 착각과 나르시스에 빠지지 않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작 수십 년간, 목회 현장에서 싸우다보니 비로소 우리는 첫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강단 앞에 바싹 엎드려 엉엉 울어야 생명을 살리는 설교, 하늘의 능력을 덧입는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만이 결코 원조나 정통이나 첫째가는 교단과 교회가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겸손히 엎드려 주의 긍휼을 구할 때에야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광야에 서서 자신은 결코 첫째(메시아)가 아님을 외쳤습니다. 자신은 늘 둘째이며, 첫째인 그리스도를 예비하러 온 자임을 천명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첫째로 높여주셨습니다(마 11:11).

이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의 대박 비결을 반추(反芻)해봅니다. 이 집은 스스로를 둘째라고 낮추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단품메뉴, 곧 초심을 잊지 않고 단팥죽 하나로 40년을 승부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겉보다 속이 꽉 차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포도주 맛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맛과 멋이 다 있다고 엄지를 치켜 들으시고 칭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오늘 같은 날에는 삼청동의 그 팥죽집이 더욱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