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미나 사크라(nomina sacra)_김진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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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나 사크라(nomina sacra)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교회에 미치는 이득 위해 성경 사본학은 겸손한 자세 요구해”

신약성경 사본들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기록방식 중 하나는 노미나 사크라이다. 라틴어로 ‘거룩한 이름들’을 의미하는 노미나 사크라는 사본들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들을 기록할 때 사용되는 전형적인 기록방식을 일컫는다. 

거의 모든 성경사본들이 하나님, 주, 예수, 성령 등의 신명(神名)을 이 기록 방식을 따라 표기하였다. 노미나 사크라는 앞과 뒤의 알파벳을 사용하여 단어를 축약하고 그 글자들 위에 밑줄을 긋는다. 하나님을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다: θεος ⇒ θ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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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나 사크라의 예: 바티칸사본(요1:1)

 – 바티칸사본의 팩시밀리 판: Bibliorum Sacrorum: Graecus Codex Vaticanus (rep. 1982).

노미나 사크라의 사용은 발견된 파피루스가 기독교적인지 아니면 이교적인지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여러 가지 우상들을 신으로 섬겼던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들 속에는 신과 관련된 표현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기독교적인지 아니면 이교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자주 있다. 이 경우 노미나 사크라의 존재여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미나 사크라는 이교적 편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고대 성경 필사자들의 전통에서 어떤 이유로 노미나 사크라가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의도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만, 노미나 사크라가 성경사본의 기록방식 가운데 독특한 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표기 방식을 통해서 필사자들이 어떤 경외감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노미나 사크라는 신비적이거나 주술적인 표식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간혹 노미나 사크라의 해독이 해석자들 사이에서 혼돈스러운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딤전 3:16에서 발견된다. 딤전 3:16은 빌 2:6-9과 같이 사도 바울의 기독론적 서술이 응집된 중요한 본문이다.

시내산사본의 원본은 관계대명사를 사용하여 ‘그는(ος)’하고 기록하였지만, 수정자들은 ‘하나님’으로 θε을 첨가하여 수정하였다(사진 참조). 시내산 사본의 수정자들은 원본에 기입된 ‘ος’를 노미나 사크라(하나님: θς)의 오기(誤記)로 간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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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사본: 딤전3:16  – 출처: http://www.codexsinaiticus.org

개역성경은 시나이사본과 바티칸사본의 원본을 따라 ‘그는’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부분을 ‘하나님’으로 읽는 사본은 비쟌틴 계열의 수많은 사본들을 대표하는 다수사본(Mehrheitstext)이다. 계속해서 이 독본의 전통은 공인본문(textus receptus)과 이를 토대로 한 킹제임스 번역을 통해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딤전 3:16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는 ‘그’를 ‘하나님’으로 바꿔 읽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신앙고백하(려)는 사본이라 생각할 수 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   그러나 이러한 ‘의도적 판독(Entzifferung)’이 과연 올바른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두절미 하고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ος)’를 노미나 사크라의 오기로 생각하여 바꿔 읽는 부분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사본상의 외적 증거 때문이며, 계속해서  딤전 3:16의 평행구라 생각할 수 있는 빌 2:6이 ‘그는(ος)’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딤전 3:16의 기독론적 서술은 빌 2:6 이하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찬송시’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그렇다고 여기 쓰인 관계대명사 ‘그를(ος)’을 ‘하나님(θεος)’으로 읽는 것에 대해서 틀렸다고 적대시 할 필요도 없다.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사료의 검토가 성경사본학의 기본적 토대이지만 그 결정은 어느 정도 신학적 직관에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에 미치는 교리적 이득을 생각한다면 ‘그(ος)’를 노미나 사크라로 읽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시간 속의 묵상을 우리에게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