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일본 3.11 피해 지역 자원봉사를 마치고_최혜경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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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11 피해 지역 자원봉사를 마치고

< 최혜경 선교사, 북서울노회 >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동북지역 대지진이 있은 이후 4번째의 겨울을 맞이하였습니다. 지진 직후에는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일본 각지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엔 어떤 모습일지, 과연 우리가 할 일이 있을지, 또한 관심이 쏠리고 그 관심이 유행처럼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남아 살고 있는 분들의 현실은 어떠한지 늘 마음 한 구석에 부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지진이 있은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피해지역 복구를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여 왔습니다. 현지에 가서 청소도 하고 집수리를 위한 내부정리도 돕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 분들의 삶의 터전이 안정되어짐과 더불어 사역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가설주택단지를 돌면서 모임을 만들어 차를 나누고 부침개를 부치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동경에서는 매주 목요일 한국어 교실의 일본 분들과 수업시작 전 동북지역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주 작은 것이었고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하고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분들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지난 4월, 박병식 목사님, 장덕만 목사님, 선교부 총무님 등을 모시고 개최된 PMS 일본지부 선교사 수련회를 계기로 가족 단위로 교제를 하게 된 민수식 선교사님 부부와 저희 부부는 몇 번의 교제를 가지는 가운데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동북지역 자원봉사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 지방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재정적 부담과 사역을 잠시 멈추고 다녀와야 하고 부부가 움직이기에 아이들만 집에 남아있다는 심적인 부담감이 있었지만, 성실하신 하나님이 순조롭게 재정을 채워 주시고, 아이들도 동역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승낙을 해 주어 저희 부부와 민수식 선교사님 부부, 4명이 팀을 꾸려 이와테현 카마이시로 2박 3일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첫날 동경을 떠나 10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도착한 곳은 미즈사와교회였습니다. 이곳에서 3.11 이와테 네트워크라는 단체의 목사님들과 만났습니다. 3.11 이와테 네트워크는 대지진이 있은 직후 이와테현의 목사님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지원 단체로 자신들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4년이 지난 지금도 현지 목사님들과 교회에 의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단체입니다.

둘째 날에는 다시 산길을 2시간정도 달려 원래 목적지였던 카마이시의 잇뽀잇뽀하우스에 짐을 풀고 가설주택 단지 모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곳에는 3명의 할머님들이 모이셨는데 함께 노래도 하고 공작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간 중간 하시는 말씀이 원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는데 지금은 모두 복구주택(나라에서 마련한 주택지)으로 이사를 해서 가설 주택에 남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들도 이사 날짜는 결정이 되어있지만 2년 뒤라는 것과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아서 언제 이사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게 된 곳이 가설주택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둘 떠나가는 이별을 맛보게 되었고, 당신은 언제 이사를 가야할지 모르는 불안과 새로운 곳에 다시 적응해야한다는 긴장을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저희들은 마음을 다해 부침개를 부쳐 드렸습니다. 처음 먹어보신다며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한국의 부침개냐며 웃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고, 자신의 막내딸보다 어리다시며 이제 자신의 막내딸이라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불러 드렸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다던 고운 엄마들, 가시는 길에 엄마가 기다릴테니 꼭 다시 오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오전 방문을 마치고 잠시 휴식 후에 다른 가설 주택단지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8명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차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공작도 하고 부침개도 부쳐 드렸습니다. 이 단지 역시 전체가 이사를 가야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곳에 도로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4개의 단지로 이루어진 곳인데 한 지역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이전을 하여 4명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단지에 들어오기 까지도 3, 4번씩 이사를 하셨던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다시 이사를 해야 한다니 마음 쉴 틈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역시 돌아가시는 길에 다시 오라고 하십니다. 가능하면 다시 오겠다고 하니 한 할머님이 모두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로 다시 오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잇뽀잇뽀하우스에서 사역하시는 스텝들을 위한 비빔밥과 부침개 파티를 열었습니다. 여자 목사님과 홍콩에서 봉사 온 형제, 가설주택 모임을 주도하는 홍콩선교사님 부부, 미즈사와에서부터 동행해 주신 일본 목사님, 우리 네 사람, 단촐한 식구였지만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스텝들에겐 따스하고 편안한 저녁이 되길 소망했습니다.

식사 후 나눈 교제에서 이제는 봉사자들도 거의 찾아오질 않아 현지에 있는 장기 사역자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도 현재 홍콩에서 온 선교사님과 형제가 있어 현지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을 위한 사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는 심리적인 케어도 필요한 상태라고 합니다. 신나게 뛰어 놀던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서 “쓰나미가 왔을 때……”라고 말을 시작하여 스텝이 놀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상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같은 일을 겪었기에 서로에게 아픔이 되고 어려운 기억을 되살리게 되는 것이기에 자신들끼리는 이야기를 못한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한 할머님이 104살 된 시어머니가 쓰나미가 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큰 복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살아계셨으면 자신도 시어머님도 살아나지 못했을 꺼라 하시며 우십니다. 살아남아서 이곳까지 왔는데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시겠다며 “차라리 그때…”라며 말끝을 흐리십니다. 엄마가 그때 살아나셨기에 오늘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위로를 해 드렸지만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4년이 지난 지금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고, 현실은 점점 더 외로워져 가고 아직도 안정이 안 되고 있으니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경에서 봉사를 준비 할 때, 과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할 일이 남아 있을까? 우리가 한번 왔다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현지에 와 보니 아직도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음이 현지 분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과 동경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한국어 교실 수업 전 기도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 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와야 하는 걸음이 무거웠지만 가슴속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게 된 엄마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허락하시면, 꼭 다시 오라하시던 엄마들의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엄마들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 되고 재정이 채워지도록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 길에도 즐거운 교제의 시간, 동역하는 기쁨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천국의 잔치를 맛보았습니다. 다음에는 더 열심히 찬양도 준비하고 더 맛있는 부침개를 준비하자며 짧은 자원봉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먼 길을 오가는 동안 건강을 지켜 주시고 아이들과 사역지를 안전하게 돌보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동역하는 귀한 지체들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뛰라고 기도와 관심과 사랑과 물질로 동역해 주시는 후원자님들이 계셔 저희들은 참 행복한 선교사들 입니다.

염성준, 최혜경 선교사 부부 (북서울 노회)

민수식, 김난영 선교사 부부(동서울 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