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_김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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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

< 김승주 목사, 참빛교회, (사)안양호스피스선교회 회장 >

 

죽음은 현실이고, 호스피스는 자기 죽음의 가장 의미 있는 연습

 

 

우리의 인생이 이토록 소중한 것은 유일회적이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실패해서는 안 될 것이 인생입니다.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겸손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은혜를 주실 분의 관심은 겸손한 자에게만 있습니다.

살아가노라면 긍지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구나 그분의 종으로서의 긍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도(度)가 넘으면 곤란합니다. 대개가 끝이 안 좋았습니다. “나는 예외니까”하다가 넘어 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양자 간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긍지가 신전의식을 가졌다면, 교만은 그것이 없습니다. 늘 믿음을 말하면서도 안하무인(眼下無人)입니다. 성공적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던지, 항상 그 분 권위 아래 자리를 잡아야 안전합니다.

섬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의 삶은 종으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불신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존재론적 의미보다는 그분의 섬김의 삶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겸손의 진위 여부는 ‘섬김’에서 입증되었습니다(마20:28). 만일 어떤 위인이 섬김의 정신은 빠진 채 그저 겸손해 보이기만 한다면 비굴이나 위선의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가끔 은사에 따라 ‘하늘의 별’을 따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적(敵)을 만듭니다. 독선 때문입니다. ‘주의 뜻을 행 했다’기 보다 ‘자기 의(義)를 드러낸 것’ 뿐입니다. 사역자들에게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마7: 21~ 23).

 

죽음 연습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 아무도 비켜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사건이 있지만 내 생애에서 죽음만한 대형 사건이 있을까요? 짐이라면 이만한 무게의 짐이 있을 까요? 코스라면 죽음만한 난(難)코스가 있을까요?

언젠가 김지하 선생님이 출연하신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분은 소위 ‘오적(五賊)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매우 강성(强性) 분위기의 인사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일화들을 나눈 후, 사회자가 “이제 민주화도 이루어 졌으니 개인적 관심사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죽음이지요”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순수하고 정직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정도의 인사라면 체면 상 다른 이야기로 에둘러 표현을 할만도 했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난 코스를 연습 한번 하지 않고 넘을 수 있습니까?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반드시 연습을 하게 됩니다. 입시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예제를 풀어봅니다. 수능을 치른 집 대문에 쌓여 있는 엄청난 책 더미를 보며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데도 코스와 주차. 주행 등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너도 나도 성공을 노래하고는 있지만, 진정한 성공은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할 것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반드시 연습을 해 두어야 합니다.

어느 국제 야구대회에서 승리한 투수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일생에 이토록 중요한 게임이 다시는 주어질 것 같지 않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몰래 나와서 달빛을 벗 삼아서 수천 개의 공을 던졌다. 비결이라면 그것이 비결이다”고 대답하더라고 했습니다.

 

유언장

죽음의 정면 돌파를 위한 효과적 프로그램 중에는 호스피스가 있습니다. 과정 중에는 전문 지식 외에도 유언장, 사전의료지시서 작성. 그리고 형편에 따라 입관체험까지도 하게 됩니다. 이때 관 앞에서 자신이 쓴 유언장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합니다. 확실한 중간 결산입니다.

서양 속담에 “장례식장에서는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삶이 더욱 진지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분들 대부분은 최악의 상황에서 만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정신(정서)적, 사회적, 영적..등으로 겪는 총체적 고통으로 너무나 황폐해 져 있고 대부분이 분노. 원망. 불안 등으로 마음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러하던 분들이 종사자들의 인격적이고도 헌신적인 돌봄에서 서서히 마음이 열리게 되고, 결국 복음을 받아 드리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천국의 유일한 입구)와 함께 어디에서도 누려 본적이 없는 참 평안함 속에 지내다가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 과정을 반복해서 지켜보면서 은연중에 “저렇게만 마칠 수만 있다면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 만해도 얼마나 큰 연습이 되겠습니까?

 

죽음을 위하여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분들도 막상 죽음을 선고 받으면 당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물며 별 관심도 없이 지내던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따금씩은 상당한(?) 위치에 있던 분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를 보고 있습니다. 성경 지식은 해박해도 연습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겸손하게, 그리고 헌신적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마지막 과정이 불안과 원망과 아쉬움 속에서 마쳐진다면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호스피스, 결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유희(遊戱)가 아닙니다.

죽음은 현실이고, 호스피스는 자기 죽음의 가장 의미 있는 연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