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할 것과 말아야 할 것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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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 마가복음 8장 38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세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비위 맞출 수 없어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생각 있는 교인들은 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끝나는 것인가? 교회는 이렇게 몰락하고 마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근래에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교인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도가 더 이상 효과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내 노라 하는 소위 교회지도자들이 연일 사고를 치며 교회의 위상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너나 할 것 없이 교회를 향하여 비난과 조롱과 모욕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목회현실은 나날이 혹독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제는 말씀, 전도, 기도, 그 외의 어떤 것도 이 상황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고 교회가 시도하는 어떤 대책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현실과 장래에 대하여 깊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제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해야 된다는 절박감을 갖고 여러 단체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 됩니다.

하나는 교회의 대사회적인 이미지를 개선해보려는 다양한 시도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회를 개혁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필수적이기도 하고 이런 일에 앞장서주는 것은 고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 우리가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과 거부를 극복하려는 방안이나 ,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시도들이 자칫하면 교회의 본질을 살려내는 데에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와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가 이 사회에 어떻게든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처신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복음과 성경의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의 세상이 싫어하는 것이나 사회로부터 책잡히거나 구설수에 오를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진리에 근거한 예언자적 선포를 해야 하는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사라지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살아남기 위한 온갖 비위맞추기에 교회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간음을 법적으로 정당화하여도 세상의 흐름이 그러하다는 명분으로 그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고,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면 또 세상이 들고 일어날까봐 몸조심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강하게 말해야 할 때 또 독선적이라고 비난 받을까봐 두려워서 입조심 하고, 정권에 아부하고, 문화적응이라는 이름으로 타협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상의 기우가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교회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 깊이 갖고 있습니다. 이제야 말로 가장 분명하게 복음과 성경의 진리를 말해야 할 때 지금까지 해온 우리의 처신이 염치가 없어서 입을 다물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선포를 하는 것이 세상의 비위를 거스려 자칫 불 난 데에 기름을 붓는 일을 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느라 할 말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말 두려워할 것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느라고 정말 두려워할 것은 묻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지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나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우리의 목적은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부인하면서라도 어떻게든 타협하여 살아남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기 위하여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 했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했고,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이라 하셨습니다(막 8:34-35).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무엇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