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獨裁)에 익숙한 것이 우리의 신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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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獨裁)에 익숙한 것이 우리의 신앙인가?

 

작금 한국교회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보고 있자면 많지는 않지만 소위 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교회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고 나아갈 길에 있어서 목사에 의해 혹은 일부 당회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편협한 길로 나가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들 몇몇 목사의 부정이나 비리 사건들로 인하여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공의와 공평을 무시하거나, 혹은 목사나 장로들이 안하무인격으로 교인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독재에 익숙해 있는 것처럼 메스컴에 노출된다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이 교주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일탈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기독교 이단들조차도 교회의 한 부류인 것처럼 메스컴에 노출됨으로써 이제 한국교회는 안팎으로 지탄의 대상처럼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차제에 우리는 교회의 정치 원리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확인함으로써 이러한 작태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는 기본적으로 ‘장로회’라는 것을 통해 이뤄지는 점에서 세속정치로서는 일종의 ‘공화정’(Republic)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말은 좀 더 세부적으로는 ‘귀족적 공화제’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귀족적’이라는 말은 세속적인 의미의 귀족의 개념이 아니다. 곧 성경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바탕으로 하는 귀족 개념이다. 한마디로 귀족적 공화제에서 귀족에 속하는 장로(a presbyter)란 얼마만큼 성경에 충실하는가를 절대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직분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장로교회에서의 교회정치는 세속사회의 민주주의 정체와는 완전히 구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사실상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서툴 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교회들, 특별히 장로교회들조차도 귀족적 공화제로서의 장로회 정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서툴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장로회 정치에 서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이나 행정권이 특정인, 이를테면 담임목사나 특정 집단 곧 당회 혹은 제직회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거의 모르거나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툴다는 의미이다.

알다시피 장로교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예를 들면 목사의 청빙이나 교회 예산안 등을 논의할 때에는 항상 ‘공동의회’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교회회원 모두가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바로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게 의사결정이나 행정권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공동의회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의사결정이나 행정에 있어서 자발성이 결여된다는 것은 전혀 장로교회의 합당한 의사결정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때의 자발성이란 회중(會衆) 자체의 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에 충실하느냐에 따른 의사결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모든 의사결정이나 행정은 말씀(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에 따라 정립된 교리와 교회법에 근거해 있다. 곧 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교회법, 즉 헌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자발적인 의사 표현이 불가능하다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장로교회의 신앙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0장과 제22장에서 직접적인 표현들에서 볼 수 있다. 제22장 ‘합당한 맹세와 서약’에 관한 신앙고백 3항에서는 “누구든지 선하고 정당한 것,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는 것, 그리고 자기가 행할 수 있고 하기로 결심한 것 이외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맹세를 통해 예속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맹세를 통해 예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백이다. 즉 억지로 맹세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합당한 맹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로교회의 모든 신앙행실들은 억지로 스스로를 묶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정당한 것,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는 것, 그리고 자기가 행할 수 있고 하기로 결심한 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상당수 한국의 개신교는 여전히 교황과 사제단의 독재를 추종하는 형태로 존립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신앙은 ‘독재자가 있어야 일이 잘 된다’고 말하는 무지몽매(無知蒙昧)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로교회 정치의 본질인 귀족적 공화제다운 면모를 다시 각인하고 교회의 의사 결정에 있어서 소위 ‘독재’라는 말이 어떤 형태로든 결코 회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회원들은 교단의 헌법을 숙지하고 그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율적 의사 결정에 하자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