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리처드 미들턴의 변혁적-총체적 종말론 되찾기”_민현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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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리처드 미들턴의 변혁적-총체적 종말론 되찾기

< 민현필 목사, 중동교회 교육 담당 >

 

 

문화는 하나님의 형상된 인간에게 주어진 본문이며 소명

 

 

필자가 7살 무렵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발인하던 날 아침, 하필 억수같은 장대비가 내렸다.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울며불며 할머니 상여를 따라가겠노라고 떼를 썼다. 그 날 상여꾼들과 시골 교회 어른들이 줄기차게 불렀던 찬송가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어린 동심에 새겨진 ‘천국의 이미지’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떼를 쓰며 어렵사리 따라가야 했던, 그러나 살아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요단강 건너편 어디쯤에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천국에 대한 이 첫 인상은 내가 대학생 선교단체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오래도록 내 의식을 지배했다.

대학생 선교 단체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캠퍼스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했다. 물론 선배들의 열정적인 기도를 흉내내는 차원에서 말이다. 처음엔 천국을 구태여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조차도 어색했다.

사실 모태 신앙으로 자라왔지만 거듭나기 전까지는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일이 별로 없었다. 또 설교하시는 목사님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교를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사실 왜 한 번도 없었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때 내 기억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나, 우리 세대가 경험해 온 한국교회는 그렇게 신학적으로 미숙했고, 또 시대정신의 한계 속에 갇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대학 1학년 새내기 시절 선배들의 권유로 읽었던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리처드 미들턴이 공저한 책이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미들턴은 <새 하늘과 새 땅>(새물결 플러스)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전의 논의들도 좋았지만, 훨씬 더 깊고 풍성해진 느낌이다. 오랜 세월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과정에서 연마된 미들턴의 주석적 통찰과 지혜들이 번득인다.

미들턴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종말론’ 논의들을 다시 한 번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돈하기 위함이다. 그가 보기에 이 종말론 논의들은 대부분 현세적 삶을 초월하려는 ‘비성경적 충동’과 현세에 대한 성경적 긍정을 혼합해 놓은 ‘혼란스럽고 미성숙한 것’이었다.

미들턴이 이 책을 통해 집요하게 논증하고자 했던 핵심적 논점은, 신약의 종말론이 성경에 대한 사변적 부가물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는 ‘총체적 신학의 논리적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것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결말을 맺는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창조 속에 이미 종말의 씨앗의 담겨 있다. 이러한 총체적 비전의 핵심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으며 앞으로 더욱 더 풍성하고 영광스럽게 이 땅에 임하는 나라다. 문화에 대한 변혁적 노력들은 문화의 변혁 가능성에 방점이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형상된 인간’에게 주어진 본문이며 소명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변혁주의 세계관을 ‘신학화된 고지론’쯤으로 폄하하거나, 하나님의 나라는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이 포괄하는 우주적 경륜과 스케일은 간과하기도 한다. 또 창조의 원리를 폐기처분하다시피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변혁의 모델로서 붙들려고 하는 재세례파적 입장도 존재한다.

미들턴은 변혁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평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변혁주의적 세계관이 가장 설득력 있는 신학적 프레임인지를 탁월하게 논증해 내고 있다.

변혁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주석학적 논증’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일반은총’에 대한 풍성한 논의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또, 중간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 일부 본문들에 대한 미들턴의 주석은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신학자들 내부에서도 분명히 이견이 존재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또 하나의 가능한 해석 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다. 다양한 논쟁적 텍스트들에 대한 명쾌한 주석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 준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책은 대학생이나 평신도 지도자들, 목회자들의 신학적 성숙을 위한 귀중한 자양분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