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십니다
김승모 장로(북서울노회 대동교회)
한 교회를 섬겨 온 지도 어언 50여 년 그중에 장로로 섬긴 세월도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정년이 되어 은퇴하고 나니 생각보다 담담하고 홀가분한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일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며 지내 온 세월들이 먼 기억으로 아련히 사라져 갑니다. 내가 가르치던 주일학교 아이들이 벌써 40, 50 중반을 넘어가고 있고, 손주들이 자라서 주일학교를 채웁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온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저는 장로가 될 때 남다른 고난이 있었습니다. 수술 부작용으로 “이 환자는 3일밖에 못 산다”는 병원 진단을 받아 장로 피택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병원으로 오가며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간신히 안수받는 날 머리가 하얀 화성교회 고 장경재 목사님이 저를 부축해 세우시며 “장로님 건강하세요”라고 부탁이라도 하듯 하신 말씀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장로가 되었으나 그 옷은 나에게 과분한 옷이었습니다. 30년간을 열심히 섬긴다고 섬겼으나 늘 남는 것은 후회와 아쉬움뿐이었습니다.
은퇴를 1년 남긴 어느 날 아침에 지난 주일 목사님 설교를 좀 더 살펴보려고 노트를 찾으러 가다가 발에 뭔가 걸려 넘어지면서 대형 티브이를 안고 쓰러져 허벅지 뼈가 부러져 세 토막이 되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고 정신마저 혼미해졌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여기저기 수술할 곳을 찾았으나 밤이 되어서 간신히 멀리 있는 개인 종합 병원에서 수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회복 도중 40일이 넘는 의식불명 혼수상태에 빠졌고 담당 의사도 가망이 없다고 머리를 흔드는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내는 가족들을 불러 마지막 얼굴을 보여 주었고 운영하던 인쇄사무실 집기는 물론 입던 옷 신발까지 내가 쓰던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교회 50년에 장로로 30년을 아내와 함께 나름대로 성심껏 교회를 섬긴 저와 아내에게 주신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다고 포기했던 나는 다시 깨어났고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물론 온 교회 성도들이 한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축하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기뻐하기엔 반년 동안 지옥 같았던 현실에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깨어나서 처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대로 조용히 천국으로 갔으면 좋겠다”였습니다. 간병에 지쳐버린 아내 역시도 같은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었지만, 은근히 원망도 밀려왔습니다. 우리 나름대로는 열심히 섬긴다고 섬겼는데 어찌 이런 일이…?
욥기 주석에서 이런 말씀을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내 믿음의 분량에 비해 이처럼 과분한 대우를 해주십니까?”가 욥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도로 사는 동안 내 믿음에 비해 예상치 못한 과분한 고난의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장로로 세우실 때 고난으로 나를 낮추신 주님은 장로직을 은퇴하는 순간에도 또다시 고난으로 낮추시며 겸손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섬긴 것 같으나 내 믿음, 내 능력, 내 열심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습니다. 장로로 섬기는 동안 고난은 나에게 주님의 최고의 사랑이었고 선물이었음을 오늘에야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조용히 앉아 성경만 읽어도 눈물이 납니다. 주님! 우리는 그져 무익한 종일뿐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소서.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