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자기결정권이 있는가?
정요석 목사(남서울노회 세움교회, 개신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겸임교수)
1. 이성을 통한 분별력의 가치와 한계
해와 비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내려주시는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일반 상식(common sense)이라고 불리는 인식을 내려주셔서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자나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주시는 은혜를 일반 은혜(common grace)라고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율법을 새겨 놓으셨다(롬 2:14-15). 이 양심은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불신자도 이 양심을 가져 사회의 질서와 법이 유지되고, 예술과 학문이 증진되고, 가정과 국가가 작동된다.
그렇다면 일반 은혜로 받은 분별력은 얼마나 옳을까? 우리 시대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는 2015년 2월에 7:2의 의견으로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제241조의 간통죄가 위헌이라며 이렇게 판결하였다. “사회 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행위에 대하여 이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게 되었다. … 전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다. …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에 7:2의 의견으로 낙태죄도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선고하였다.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데 낙태죄는 이것을 제한하거나 침해한다고 보았다.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행복권 보호도 중요하므로 국가는 임신 22주 내외에 이르기 전까지는 산모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대법관의 전원합의체도 2024년 7월에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실혼에 있는 이성 부부에 대해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반면에, 사실혼의 동성 부부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원합의체는 이를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취급으로 보아 7:2로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라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 사회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니 과잉되게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다. 간통, 낙태, 동성애 등의 옳고 그름이 사회 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에 달려있다. 이것이 일반 은혜를 받은 일반인의 인식 능력의 한계이다.
2.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자기결정권과 인권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원 속에서 아무 이유 없이 순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간과하신다는 선택과 유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결정으로 인해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불공평한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이들은 이성으로 대표되는 본성의 빛을 잘 사용하여 선행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고 본다.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할 자를 미리 보시고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결정에 따라 선택과 버림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칼뱅주의자들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선한 행위를 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 본다. 전적으로 부패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결정만을 할 뿐이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순전한 사랑과 은혜로 이들을 택하여 이들에게 믿음까지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올바른 자기결정권은 절대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 중 공의라는 속성에 너무 집중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과 순전한 사랑 등의 다른 속성들을 상대적으로 경시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결정할 때 사람의 인권이 서고, 하나님의 공의도 보장된다고 본다.
사람에게 자기결정권이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하고, 인권이 지켜진다는 생각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이미 4세기에 펠라기우스가 사람의 능력을 낙관적으로 보아 주장했고, 다소 약화된 형태로 아르미니우스가 17세기 초에 주장했다. 1618-19년에 열린 도르트 총회는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잘못된 가르침으로 정죄하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순전히 값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선택을 받아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확정하였다. 이것은 그대로 우리 합신 총회가 받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영원한 작정)에 담겨있다.
3. 성경과 믿음에 따른 분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지만, 신자는 십계명의 제7계명을 따라 간통과 동성애를 여전히 죄라고 여기는 인식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특별 은혜로 주어진 성경과 믿음에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9-13).
바울은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데, 불신자들 중에서 음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 내의 신자가 음행할 경우 교회에서 내쫓으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않으려 하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세상에는 음행하는 자, 탐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등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들을 사귀지 않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회는 신자의 거룩함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알려주신 의의 완전한 규범으로써 믿음과 생활의 규범이다. 특별 은혜를 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믿음으로 안다. 신자라고 해서 이것을 다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지키지 못할 때 부끄러워하며 다시금 잘 지키려고 마음을 다진다. 신자는 말씀에 따라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거와 탐욕을 하지 않아야 한다. 십계명을 상습적으로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교회 밖으로 내쫓음으로써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해야 한다.
일반 사회는 일반 은혜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은 이성을 사용하여 일반 상식 수준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뿐이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은 사회 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하면 그에 따라 법률을 만들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의해 지명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역시 국민의 의식에 맞추어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주신 일반 은혜마저도 잘못 사용하는 일반 사회는 결국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과잉금지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겨 앞으로 더 기이한 현상들을 연출할 것이다.
신자는 일반 사회를 향하여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지혜를 발휘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내야 한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결국 다수결로 법과 제도와 문화가 형성되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신자가 많아지게 해야 한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제도와 법과 문화에 반영되도록 학문, 시민운동, 유튜브, 캠페인, 법제화를 위한 로비, 합법적 시위 등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담지한 자로서 그에 맞는 품격과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드러내어 그들의 수긍과 존중을 얻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분노가 앞서 우리의 표출 방식이 너무 공격적이고 무례함이 배일 때 한동안은 성공할지 모르나, 일반 사회는 다수라는 무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법제화하는 데 거침이 없을 것이다.
교회가 십계명에 따라 우상숭배와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거와 탐욕을 멀리하며 선행에 힘쓰고, 안식일과 부모 공경을 준수함으로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할 때 일반 사회는 교회의 주장을 존중하며 관심과 신뢰를 보인다. 교회가 간음, 횡령, 세습, 표절, 거짓 증언 등에서 일반 사회보다 월등하지 않을 때 성적 자기결정권을 반대한다는 교회의 주장은 일반 사회의 동의와 수긍을 얻어내기 힘들다.
요사이 한국 교회들이 반동성애와 반차별금지법에서 상당한 수준의 단합이 되는 것이 간음, 횡령, 세습, 표절, 거짓 증언 등에서는 흠이 있음에도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거룩함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죄들에 대해서도 민감해야 한다. 교회가 높은 거룩함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사회로 맑은 물을 흘려보낼 때 장기적으로, 본질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갈수록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할 것이다. 이상한 법과 제도와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회에서 우리와 자녀들이 살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게 일반 사회의 한계이다. 우리는 그럴수록 교회의 거룩함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럴 때 진리에 목말라하는 일반인이 교회의 주장과 선포에서 통찰과 안식을 얻으며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4. 전체 성경이 깃든 신앙고백에 따른 분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때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사라진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홍수를 통해 모두 죽이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 8명만 살려주셨다. 그 후에도 노아의 후예는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였다. 자기들의 결정권으로 그런 왕국을 건설하여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 이후의 세계 역사도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과 과잉금지원칙이 강하게 드러나는 연속이었지 큰 차이가 없다.
앞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와 인권위원회는 일반 은혜를 사용하여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일반 은혜를 올바로 사용하여 옳은 결정도 다수 내리겠지만, 일반 은혜를 잘못 사용하여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과 과잉금지원칙이 배인 틀린 결정도 많이 내릴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일반 은혜를 잘못 사용하는 일반인의 한계인 줄 알고 너무 놀라서는 안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특별 은혜를 받아 올바른 분별력을 가진 것에 대해 크게 감사해야 하고,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사회를 향해서 진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지혜롭게 겸손히 전함으로 그들에게 통찰을 전하고 그들의 직관을 올바로 이끌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신학에 대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신구약 성경에 교훈한 교리들을 총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이것들을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겠다고 임직 때 선서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기준으로 삼아 신앙과 생활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주장을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세속 정치와 이념을 기준으로 삼아 편향된 진보나 보수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근본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처럼 성경의 특정한 가치와 하나님의 한두 가지 속성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교단은 근본주의나 복음주의가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받는 개혁주의이다. 우리는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에 따른 높은 수준의 기준으로 모든 일을 분별하고 비평하여야 한다.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쳐서 자만하지 않아야 하고, 예의와 겸손함과 지혜로 일반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어 법과 제도와 문화에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