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로잔대회 서울 선언문과 차별금지법
김병훈 교수(합신 조직신학 석좌교수, 본보 부주필)
2024 서울-인천 4차 로잔대회가 9월 22일~28일에 걸쳐 7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4차 로잔대회는 ‘서울 선언문’을 남겼다. 이 선언문은 서문과 7가지 주제들(복음, 성경, 교회, 인간, 제자도, 열방의 가족, 기술),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인간 주제 아래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56절~70절)에 대한 기술에 대하여 만족과 불만족으로 반응이 갈리고 있다. 특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해 온 단체들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서울 선언문’은 이러한 항의를 받을만한지를 간단히 살피고, 앞으로 4차 로잔대회 이후 한국 교계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간단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서울 선언문’이 인정하는 바는 이러하다. 선언문은 사람의 성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sex)으로만 한정한다(56절). 동시에 태어날 때, 곧 생물학적으로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간성(intersex)인 사람이 있음을 인정한다(58절). 혼인과 관련하여 선언문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성경적으로 합법적이라고 선언한다(59, 60절).
다음 ‘서울 선언문’을 거부하며 배격하는 바는 이러하다. 선언문은 사회적 성별을 말하는 젠더(gender)를 생물학적 성(sex)과 분리하는 시도를 배격한다. 또한 성 정체성이나 자기 성 정체성 표현이 바뀔 수 있다는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을 거부한다(57절). 동성 파트너십을 유효한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도가 교회 내에 있음을 애통해하며 슬퍼한다(61절). 신구약 성경이 동성 간 성적 친밀감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 여섯 구절을(창 19:1-3; 레 18:20; 20:13; 롬 1:24-27; 고전 6:9-11; 딤전 1:9-11) 언급하면서 동성 간 성행위가 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보편 기준과 하나님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적 표준에 어긋난 악행임을 선언한다(67, 68절).
이처럼 ‘서울 선언문’이 인정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진술은 이미 2010 케이프타운 3차 로잔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에서 선언한 바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3차 로잔대회 이후 14년 동안 특별히 서구 사회에서 LGBTQIA+가 더욱 만연한 상태이며 일부 교회가 이에 굴복하여 이러한 문화적 상황을 수용하는 형편임을 고려할 때, 4차 로잔의 선언은 전 세계 복음적 교회가 취하여야 할 방향을 바르게 지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족한 점은 없을까?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온 단체들은 왜 4차 로잔에 대하여 항의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일까? ‘서울 선언문’은 동성애의 끌림이 있거나, 동성애 행위를 행하는 자들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교회 안팎에 존재하는 현실을 언급한다. 이 현실 인식을 진술하면서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자들이 로잔이 마치 동성애를 선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 주장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4차 로잔은 이미 동성애가 객관적인 측면에서 죄 아래 있는 인간에 대한 진술(50절)과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성경의 6구절의 인용에서 잘 밝히고 있다(67절). 그러나 이에 더하여 로잔의 견해가 동성애를 선천적으로 본다는 왜곡과 오용을 차단하기 위하여 선언문은 주관적인 측면에서 타락한 인간의 왜곡된 성적 지향성일 뿐이라는 진술을 강조하여 선명히 덧붙여야 했다.
아울러 ‘서울 선언문’은 이러한 현실 인식 위에서 동성 성관계에 대한 대책으로 교회가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의 끌림을 받는 자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형제자매로서 받아야 할 사랑과 우정을 충분히 주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69절). 그리고 이제 교회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목회적 돌봄과 사랑과 우정의 건강한 공동체 관계로 이들을 제자 훈련으로 지원하는 일로 나갈 것을 촉구한다(70절). ‘서울 선언문’의 현실 인식과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목회적 돌봄의 필요성에 대한 진술은 그대로 수용할만하다. 그것은 복음의 신앙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들어오고자 하는 자나 들어와 있는 교인 가운데 동성애의 끌림의 유혹을 고통받는 자나 이를 행하는 자가 있음이 드러날 경우, 이들에게 성경의 교훈 앞에 바로 서도록 하며 회개하고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을 사랑과 우정으로 행하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 선언문’은 이러한 진술을 개진하는 동시에 마땅히 강조했어야 할 한 가지 초점을 간과하거나 무심히 지나쳐 버렸다. 그것은 차별금지법과 같은 사회법에 대한 저항의 당위성과 실행의 요구이다. 이것은 로잔이 말하고 있는 바를 따르는 것으로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희망의 이유를 주어야 하며(44절) 공동선을 증진하고 정의의 대의를 진전시켜야 하는 교회의 사명(46절)에 대한 적용이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사회법이 이미 서구 국가에서 제정된 현실을 보면서 교회가 이에 대하여 저항하지 않은 것에 대해 회개하며 애통하고 다른 국가들에서 이러한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계 복음적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임을 선언했어야 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4차 로잔 ‘서울 선언문’이 선언하고 있는 교회의 사명이며(33~35절), 3차 로잔 ‘케이프타운 서약’이 밝히고 있는 행동 요청이다(케이프타운 서약, 57~58절). ‘서울 선언문’이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인종 간, 종교 간 갈등과 무력 전쟁의 발생에 대하여 슬픔을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시리아, 미얀마, 수단, 에티오피아 지역들을 언급하는 것처럼,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목도되고 있는 이러한 사회법의 제정 시도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과 우려를 충분히 표할 수가 있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 4차 로잔대회의 리더십을 맡은 교계의 지도자들이나 참여자들이 이 노력에 앞서 나가야 한다. 이것은 3차 케이프타운과 4차 서울 로잔의 연속선 상에서 요구되는 행동 요청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반대에 힘을 모은 모든 단체는 ‘서울 선언문’에 대한 아쉬움을 부각하며 비판할 수 있겠으나 이보다 로잔의 선언문에 담긴 긍정적 진술에 기초하여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행동 요청’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공동체의 전체 역량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하는 참으로 중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