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0년 전 파리 올림픽- ‘에릭 리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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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파리 올림픽
– ‘에릭 리들’을 기리며

이제 곧 세계의 스포츠 축제인 제33회 올림픽이 파리에서 열린다. 오래전부터 파리 시청사는 “Paris 2024”를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로 도배를 했고, 길거리마다 파리 올림픽을 환영하는 다양한 장식물이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손바닥만큼 작은 가게든지 값진 물품을 자랑하는 고급 백화점이든지 상점에 들어서면 올림픽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념품이 넘쳐난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파리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흥분된 표정으로 장사진을 이루며 올림픽을 기다리고 있다. 현장에 직접 가지는 못할지라도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현격히 발전된 인터넷 시스템의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기들을 관전할 것이기에 참여율은 전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꼭 100년 전인 1924년에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 적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 올림픽에 큰 관심을 끌게 하는 동인 가운데 하나이다. 제8회 파리 올림픽이다. 그 자리에는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영감을 얻어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켰던 쿠베르탱 남작도 IOC 위원장으로 참석하였다. 이번 제33회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제8회 파리 올림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국가에 속한 공적 기관들 뿐 아니라 여러 단체들이 이번 올림픽을 홍보하면서 100년 전 올림픽을 자주 입에 올린다. 심지어 패션 업계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기업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는 단독 컬렉션을 시장에 내놓기도 하였다.

100년 전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의 체육이 강세를 이루면서 독일의 참가가 거절당한 것도 일화 가운데 하나이다. 핀란드 육상선수 파보 누르미는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는 같은 날 두 개의 경기를 치렀는데, 1,500미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는 겨우 55분 후에 다시 5,000미터 트랙을 달려 금메달을 목에 거는 놀라운 경기력을 펼쳤다. 미국의 수영선수 조니 와이즈뮬러는 금메달을 세 개나 땄고, 다음 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을 두 개를 추가하였다. 이후 그는 영화 “타잔”에 출연하여 12편의 영화를 찍는 유명세를 얻었다.

제8회 올림픽의 많은 이야깃거리 가운데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에릭 리들(Eric Liddell) 이야기이다. 그는 책, 영화, 그 외에 다양한 미디어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한 인물이다. 리들은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100미터 경주의 전설이다. 리들은 일찍부터 달리기에 발군(拔群)의 실력을 드러내었는데 에든버러 대학에 다닐 때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빠른 선수라고 불릴 정도로 그 기량이 절정에 달하였고 언론은 일찌감치 그를 파리 올림픽 우승 후보로 점찍어 놓았다. 하지만 리들은 올림픽에서 100미터 경주에 참가하지 않았다. 예선전이 주일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출전 포기 결정에 쏟아진 수많은 비난의 포화 앞에서 리들은 담담하게 “나는 주일에는 달리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올림픽 금메달을 회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늘 하던 대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주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대신 사람들이 행사를 치르는 날로 전락한 우리 시대 신자들의 귓전을 때리는 말이다. 대신에 리들은 자신 주 종목이 아닌 두 경기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는 쾌거를 일구어냈다. 7월 9일 수요일에 열린 200미터 결승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7월 11일 금요일 저녁에 거행된 400미터 결승전에서는 다른 혁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리들은 순수한 체육인의 모습 뿐 아니라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100년 전 제8회 올림픽의 전설 에릭 리들을 기린다. 이번에도 과연 이런 인물이 있을까? 일설에 따르면, 400미터 경기를 하러 숙소를 나서는 리들에게 담당 안마사가 작은 쪽지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최선을 다할 것을 격려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사무엘상 2:30 가운데 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