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교직자 수양회 둘째 날 : 설교] 하나님의 의지 (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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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지 (엡 1:3-6)

박영선 목사(남포교회 원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는 과정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조작하고 명령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 말씀의 핵심은 창조 세계와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 속에 시작되었고 또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창조와 부활의 종교라고 말한다면, 창조와 부활 사이에 실패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실패란 창조된 인류가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실패를 지워버리고 새로 만들지 않고 그 실패를 싸안고 부활을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권력과 영광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와 사망의 자리까지 따라 들어오는 수모를 겪고, 당신의 아들이 우리 손에 죽는 방법을 통하여 자기가 하나님인 것과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십니다(히 5:8-9). 하나님은 이렇게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면서도, 우리를 기르시는 일에서 우리를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에 집어넣으십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 속에서 예수 믿음과 믿지 않음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신자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 살도록 하십니다(엡 4:17-24).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수준은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구원론과 종말론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된 것을 내가 확신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죄가 왕노릇하는 곳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면서 예수를 믿게 됐는데 도대체 어떤 지위, 어떤 신분과 함께 어떤 현실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냐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주일은 신자라도 나머지 6일은 세상 사람이 돼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그런 현실을 허락하시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명분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전부인 신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지금 예수를 믿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고 그 답을 찾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인 우리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실 것이라면 차라리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달라고 간구한 것(출 32:32)이나, 바울이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한 말(롬 9:3)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원 받고 안 받고의 문제보다 훨씬 큰 스케일과 차원입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단순히 우리가 구원받고 안 받고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과정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만드는 과정이 우리가 겪는 현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온갖 실패와 가슴 아픈 상처를 통해 더 나은, 더 깊은, 더 높은 차원으로 반응하는 성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것 사이에 실패가 있다는 것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동일한 고통과 참혹한 현실이 왜 찾아오는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어려워지지 않으면 그저 걱정 없고 형통한 삶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고난과 걱정이 없으면 사람은 뇌를 쓰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 비로소 “나는 뭐고 하나님은 뭐야? 내 인생은 왜 이래?”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억울해하고 반발하고.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길러집니다.

여러분의 교인들을 현실에서 신자가 되게 만드시고 자라게 하셔야 합니다. 일상에서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답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어른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 안 믿는다, 복 받는다, 저주받는다”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 기독교의 궁극적인 열매가 무엇인가를 묻는 데로 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신자의 현실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치는 데는 거의 없습니다. 여기가 우리 교단에 주어진 명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희일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역과 만나는 현실이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를 저가 되게 만든 제일 많은 기억은 창피한 일들, 못난 과거입니다. 이것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는 믿었고, 너는 믿지 않았다, 지옥가냐 천국가냐”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믿지 않는 자가 가질 수 없는 명예를 가졌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를 모르면 명예를 가질 수 없는 이 비참한, 저주 아래 있음, 분노와 보복 외에 다른 걸 선택할 수 없는 절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지배와 인도를 받아 자라나고 완성되고 멋있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그 명령을 완성하고 자기의 짐을 지고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멋진 신앙의 지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