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회의주의 시대에 교회가 갈 길_김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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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회의주의 시대에 교회가 갈 길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개혁은 진리를 가장 바르게 세웠던 교회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 것

 

 

칼빈에게 있어서 자아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 의존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진정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더 풍부해 질 때 비로소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며 역시 다른 피조물들이나 우주에 관한 지식도 더 잘 알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근대의 합리적 정신으로부터 자란 논리에 의하면, 자연의 비밀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실험정신과 거기로부터 이끌어 낸 거부할 수 없는 지식들이 큰 거품 이론들을 지나 멀리 쌓게 되는 지식들에 의해서 조금씩 벗겨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상호 엄밀하게 비판적인 긴 검증에 의해서 쌓아진 지식들도 이제 겨우 검증될 수 있는 지식에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고전적 화석연료들을 대체하기 위해서 물에서 직접 전자들만을 끌어내어 전기를 생산한다면, 물 1g 안에 대략 수소이온인 프로톤들이 10의 24승 개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프로톤들이 다른 원소들에게로 이동하여 그 프로톤들의 수보다 더 많은 전자들을 끌어내 지금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 생산의 결과만을 이용할 뿐이지 거의 1.5 피코초로 이동하는 프로톤들의 이동을 직접 거리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 프로톤들의 위치를 변경시키는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가장 짧게 펨토 초 단위로 생산되는 복합물질로부터 나오는 X선이나 혹은 가시광선보다 약간 긴 적외선 파장을 이용하여 겨우 시간 상 원자들 사이의 간격보다 더 짧은 시간 간격에서 생길 수 있는 변화를 감지하여 간접적으로나마 그 위치나 이동들을 추론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직접 그 이동 자체들을 위치적으로 일어난 그대로를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다. 즉 공간의 길이를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와 같은 경우는 거시세계의 경우에 더 분명하다.

즉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먼 은하계와 지구와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시간으로만 측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객관성에 비해서 지금 시간만큼 불분명한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가속과 등속이 있는데 왜 시간이 없느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런 개념들의 실재 현상은 힘이나 운동, 운동의 방식들 및 차원과 같은 비약적 질서 등으로도 설명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많은 거품들로 남아 있는 물리학이나 화학의 근본적 이론들을 낱낱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현대시대의 회의주의는 지금 과학에서 근본적으로 찾아야 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과학들의 객관성은 더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거의 인간문명과 문화와 관련된 인간론적인 객관성에 불과하다. 경제지표들이나 행복지수와 같은 사회학적 지수들은 그런 대표적 인간론적인 객관성의 예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성경과 교회는 그 진리성에 있어서 그와같은 인간론적인 객관성을 근원부터 철저히 비판해왔고 신적인 답으로 제시된 죽음의 문제, 죄 문제, 신적 은혜의 내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답들을 모든 세상 앞에서 선포하여 왔다.

그렇기에 미래 사회에 대한 대비로써 죽음의 문제, 죄 문제, 신적 은혜의 근본적 성격에 대해서 현존한 인간론적인 객관성으로부터 기독교적 진리성을 더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현대사회에 깊은 뿌리로 자리잡을 수 있는 극단적 회의주의를 막아야 할 것이다.

현 시대의 교회는 과거의 어떤 역사적, 지역적 교회들보다 그 사명이 깊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 사회 앞에서 교회의 고유한 기능들이 이제 국가의 기능들 안에 조금씩 흡수되면서 과거의 역사적 교회들의 모범을 따를 수 없는 위기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회가 모든 미래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오래된 참된 진리를 가진 자로서 지금 예측이 가능한 극단적 회의주의에 대한 방어를 다른 기구들이나 영역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직접 그런 회의주의가 뿌리를 두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교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서로의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값진 인간의 고귀한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의 중요한 골격이다.

극단적 회의주의가 점점 강해지는 미래사회에 교인들의 수가 세계적으로 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세계 안에 있는 어느 교회든 교회에게 중요한 것은 참된 진리를 가진 교회로서 문명과 문화에 적응하고 융화하였던 모든 실수들을 정리하여 배제하고, 성경에 따라 진리를 가장 바르게 세웠던 교회의 가르침들을 더 철저히 존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진리들만을 모아 마지막 인간의 극단적 회의주의를 대비하여 성경적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정통개혁교회를 포함하여 과거의 어떤 역사적 교회들도 싸우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서 초인적으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존에 교회의 틀들이 그런 일에 방해가 된다면, 교회의 역사나 세계교회 상황을 고려하지 말고 철저히 정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가장 좋은 바른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바른 진리와 바른 교회만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다 행하시고 이루신다고 믿어야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문제들만 남아 있다.

그 문제를 쉽게 푸는 방식은 성경에서 흔히 발견된 대로 선지자적인 파수군의 저항적인 강한 외침에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