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극화를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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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경계하자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표현과 행동들이 보편화되는 모순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이나 생각의 최대치를 나타내고 강조적인 표현을 위한 정도가 아닌, 도를 넘는 자기중심적인 극단의 주장이 소신을 넘어 아집의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정치, 이념, 사회, 경제, 문화, 세대를 망라한 지나친 자기애(自己愛)적인 극단적 표현과 주장은 결국 ‘나 아니면 모두 틀렸다’는 이기적 고집이 되고, 결국 나와 다른 사람과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나머지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기형적인 모습이 일반화되는 사회적 현상으로 점차 굳어가도 있는 듯하다.

진리의 문제는 절대적 주장을 굽힐 수 없는 부분이지만 진리가 아니라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래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정도 할 수 있어야 하건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기능을 상당히 잃어버린 것 같다는 염려를 하게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그리 쉬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이나 가치관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런 성숙의 자세는 점점 이론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대신 오늘의 현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지 말아야 할 극단적 자기주장으로 양극화되어 가고 있음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이천 년 전 유대 땅에서 기승을 부렸던 양극화와 집단적 자기애(自己愛)가 만들어 낸 인류 최대의 범죄 행위였던 골고다 십자가 사건의 배후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율법의 절대적 가치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당시 사회의 극단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던 바리새인들, 성경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이성적인 자기주장만 소리 높였던 자칭 진보의 정점을 찍었던 사두개인들, 국가의 독립과 현실적 문제 타파에만 몰두했던 현실파 열심당원들, 그들의 최선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은 일찌감치 내던져 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소리에만 집중하여, 그 소리에 약간의 뜻이 맞으면 합하고 다르면 배척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골고다 사건이 아니었던가? 결국 도를 넘는 자기중심주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하나가 되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의 구덩이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교회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유도 뿌리도 아무런 논리도 없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냈었는데, 어느 순간 그보다 훨씬 더 큰 자리를 잡고 들어온 양극화의 바이러스는 손을 뻗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신앙도 이념을 이기지 못한다’는 엉뚱한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여기저기서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 시대 우리의 현실을 소홀이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보수주의, 진보주의, 혼합주의라는 단어들은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줘야 한다. 국내 정치적 영역은 물론이며 국제 사회의 변화되는 모습이나 심지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전쟁의 상황을 놓고서도 극단적인 양극화의 평가를 내어 놓는 것은 부끄럽고 못난 일이다.

교회는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이면 충분하다. 교회가 서야 할 자리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뿐이다. 다가오는 선거철을 앞두고 조금은 과하다 싶을 만큼 나를 내려놓고 서로를 향하여 귀를 여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숙과 화합의 모습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교회가 가장 먼저 이러한 성숙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우리 사회를 향한 모범의 본분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