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이중직 금지 제도에 대한 실천적 이해
<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
상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목사가 굳이 직업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복잡한 교회 현실과 원리가 사라진 시대 속에서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라는 주장이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원리’인 듯 생각되고 있다.
-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의 필요성
현실 때문에 원리가 잠식(蠶食)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왜 목사의 이중직 논의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상당수의 목사들이 부족한 생활비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왜 목사들이 합당한 생활비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는가?”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양극화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평균케 함의 원리’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어떤 교회는 1년 재정이 몇 백억이지만, 어떤 교회는 1년 재정이 2천만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목사를 위해 넉넉한 생활비를 제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당수의 교회들이 재정적인 측면에서의 미자립교회라는 사실은 원리를 제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있다 하더라도 공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현실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고, 원리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공교회의 정신에 따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는 마땅히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를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리를 실천할 수 있다.
또 하나 무분별한 교회개척 때문이다. 장로교 원리상 교회의 개척은 노회의 소관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노회는 교회개척을 위한 목사를 ‘전도목사’로 파송하면서 생활비 지원을 약속하게 되어 있다. ‘전도’ 활동이 끝나 교회 ‘개척’이 종료할 때까지 노회는 목사의 생활비를 책임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러한 현실이 왜곡되어 목사 개인이 일단 교회를 개척한 뒤에 노회의 허락을 받는다. 물론 사후 허락을 원천 봉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후 허락이 보편화되다보니 충분한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들이 많아지고, 결국 합당한 생활비를 교회(노회)로부터 받지 못하여 다른 직업을 함께 가져야 할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현실들’은 오늘날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목사의 이중직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지, ‘원리’가 그러해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는 없다.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해 달라는 분이나 이 주장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들은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 ‘원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원리와 현실 사이에서
원리와 현실, 그리고 제도가 있다. 제도는 기본적으로 원리에 근거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 때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원리를 무시하고 현실만 반영한 제도는 시행되면 될수록 문제점이 드러나고 결국 원리를 잃게 만들고 현실을 악화시킨다. 원리에 근거한 제도가 남아있을 때에는 그나마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할 텐데, 현실에 근거하여 제도를 바꾸어 버리면 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와 목사 생계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원리이다. 목사에게 합당한 생활비를 제공하기 어려운 교회와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은 현실이다. 이러한 원리와 현실 사이에서 현재의 제도는 원리에 근거한 제도이다. 원리를 지키기 위해서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따라 제도를 바꾸어 버리면 원리가 사라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목사의 이중직 허용을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대로 원리보다는 현실에 따라 제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가까운 시점에는 생계의 위협을 받는 목사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생계를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교회의 부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원리가 훼손되고 현실만 남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마저도 더 악화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악화될까?
①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회가 그 책임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공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미뤄버릴 것이다.
②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요구할 것이다. “다른 교회 목사는 자신이 직접 생계를 책임지는데 왜 우리교회 목사는 교회가 생계를 책임지는가?”라고.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져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닌 “목사도 자기의 생계를 자기가 책임져라”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충분한 재정적 능력이 있는 교회마저도 목사의 생활비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
③ 그 결과 원래는 이 제도와 상관없는 목사들마저 일터로 내몰릴 것이다.
④ 어떤 교회는 ‘부자 목사’를 원할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자기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기 때문에 목사직에 전념할 수 있는 목사를 청빙하려고만 할 것이다.
⑤ 목사이면서 다른 직업을 가지려는 분들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목사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목사라는 직분이 전적으로 감당해야만 가능하다는 의식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⑥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일들이 확산되어 교회 전체가 말씀에서 멀어지고 목사직의 세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교회를 위함이다
공무원이나 사기업의 사원들에 대해서 이중직을 금한다. 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제1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 (영리 업무의 금지)에 의하면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그 이유 중에는 공무원의 직무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다. 대부분의 사기업은 직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금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기업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될 때에 목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교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교회를 말씀의 터 위에 든든히 세우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있다. 이 때 원리는 잘 보존해야 한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라는 원리를 제도화한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따라 이 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교회는 최대한 목사의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는 일에 힘쓰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예외적 허용’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제도를 바꿔서가 아니라 제도는 그대로 두되 그에 대한 적용을 통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도 부득이한 이유 때문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지 절대로 주(主)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시로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것이요 부업으로서 갖는 것이지, 그 직업이 주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에 교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원리를 쉽게 잃어버릴 것이다.
결론
안타깝게도 직분과 교회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야 할 교회의 교사인 목사들이 나서서 이중직을 공식적으로 허용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 결국 목사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모르고 있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목사의 생계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귀한 전통과 유산이요 목사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목사로 하여금 생업 전선에 내몰리지 않게 함으로써 목사의 직분과 직무를 보호하고, 목사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또한 교회로 하여금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책임을 다하게 함으로써 목사직의 성실한 수행을 통해 교회가 보존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목사와 교회를 위한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