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적
명암이 늘 공존하듯이 기독교에는 시작부터 다양한 적들이 나란히 존재하였다. 이런 적들은 어둠, 가라지, 늑대, 삯꾼, 거짓 선지자, 미혹의 영 등 여러 메타포로 불린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지 복음과 진리를 희석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변질시키고 파괴하려는 적들이다. 이들은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빠짐없이 경고의 대상이 되었고 기독교의 역사를 통틀어 끊임없이 이슈로 대두하였다.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 같은 주제에서 일어난 신학 이단은 성경의 진리를 인간의 이성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다. 기독교 초기부터 이원론에 바탕을 둔 영지주의 가현설은 신학의 모든 분야에 쓴 뿌리를 내리면서 신비주의라는 신앙 방식을 파생시켰다. 거대한 중세가톨릭을 삼킬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신비주의는 지금도 무서운 적으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 신비주의와 함께 기독교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세속화일 것이다. 세상은 구원의 대상이므로 교회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과 단절되거나 세상을 배척하는 이원론적인 태도는 옳지 않고, 세상과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마찰을 빚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의 영향을 받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이방인처럼 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나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은 모두 같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때로 슬그머니 스며들고 때로 공격적으로 침투하는 세상의 말을 듣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면서 변질된다.
가장 심각한 사태는 본질이 변질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진리종교인데 세속화가 되면 행복종교로 바뀐다. 이때 기독교는 가치관이 뒤틀어지면서 행복, 성공, 부요, 건강 등을 위주로 삼는다. 물론 행복은 좋은 것이며 성공은 필요한 것이다. 물질이 풍성한 것은 기쁜 일이며 심신이 건강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우선순위가 전도되어 진리가 행복과 성공에 의해 첫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며, 믿음이 부요와 건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진리가 첫 자리를 잃으면 진리를 위해 행복과 성공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갔던 신자들은 얼굴빛을 잃고, 믿음이 수단으로 바뀌면 재물과 목숨과 버리고 순교의 길을 갔던 선배들은 몸 둘 자리가 없다.
이따금 우리는 전도의 기회를 얻기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세상과 친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그들의 욕구에 맞는 말을 해주어야지 않느냐는 논조이다. 물론 교회는 세상에 친화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빈민구제며 사회봉사며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실천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관까지 맞추어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불편해 할 것을 염려하여, 복음과 진리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는 것은 옳지 않고, 세상이 듣기에 편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주로 늘어놓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세상과 비슷하지 않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세상을 닮아갈 때 예배가 드라마가 되고, 설교는 만담으로 바뀌고, 찬송은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가 되고, 직분이 높낮이를 다투는 계급으로 여겨진다.
기독교는 본래 세상 사람들에게 찔림을 주는 종교이며, 사회 지도자들에게 미쳤다고 평가를 받는 종교이고, 시대의 조류와 함께 달음질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김 받는 종교이다. 세상의 눈치를 살피고, 세상의 입맛에 맞추고, 세상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세상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창조론을 포기하고, 세상의 호감을 얻으려고 동성애를 용인하고, 세상의 권력에 기댈 목적으로 정치에 편승하는 것은 기독교가 스스로 자신의 적이 되는 세속화이다.
따지고 보면, 세속화의 뿌리는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는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근본에 진리가 없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보다 인간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인본주의에서 나오는 자아중심주의는 복음과 진리를 망치는 최악의 적이다. 그것은 자기의 만족을 위해 얻기만 하고 잃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 왕이 되려 할 뿐이지 그리스도 때문에 종이 되려 하지 않는다(고전 4:8-10).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할 최대의 적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니라 자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