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기는 묵상] 리처드 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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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십스 Richard Sibbes (1577–1635)

겉모양을 볼 때 포도나무는 볼품이 없고 보기 흉한 나무입니다. 관상하기에 아름답거나 보기 좋은 나무가 아닙니다. 하지만 겉모양은 볼품이 없을지라도 열매는 풍성하게 맺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외적인 형세나 모양을 볼 때, 그것은 추하고 고난으로 인해 손상을 입었으며, 이 땅에서는 활기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입니다(골 3:3). 이 세상에서 그들의 생명은 많은 고난과 시련, 연약함과 결점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와 같은 것들에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태가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풍채나 고운 모양이 없었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영광으로 충만했던 것처럼 교회의 아름다움 역시 그 내면에 있습니다. 외관상 보기에 교회는 포도나무와 같이 볼품이 전혀 없으며 구불구불하고 반듯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나무에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셈입니다. 오직 거기에 맺히는 열매만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나 개별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가 마치 포도나무와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외적인 통치 체제에 있어서 다른 통치 체제가 가지고 있는 묘한 정책이나 외적인 영광을 소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교회를 통치하는 하나님의 은밀한 내적 역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모든 묘한 정책을 능가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수치로부터 영광을 이끌어내시며,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이끌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낮추게 하시고, 그 다음에 높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탁월한 역사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사람을 겸비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나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서 보게 되는 외적인 초라함을 비난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이 짓밟히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단지 포도나무와 같아서 볼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은 숨겨 있을 뿐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포도나무가 본래 어떤 것인지 아주 탁월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겔 15:3). 포도나무 자체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그릇을 걸어 놓을 못 하나도 만들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부서지기 쉬운 나무라서, 열매를 맺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을 한 사람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 사람이 있는 처소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사람들 중에서 제일 못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이든지 제일 못난 사람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포도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다면 비록 겉모양을 볼품이 없을지라도 가장 탁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불에 던져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