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세계 교회사 11] 95개조 테제(95 Theses)_안상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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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조 테제(95 Theses)

안상혁 교수(합신, 역사신학)

 

독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Castle Church)의 정문 사진이다. 루터의 95개조 테제를 새겨 넣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면벌부 판매를 논박하는 ‘95개조 테제’를 작성하여 독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Castle Church)의 문에 게시했다고 알려져 왔다. ‘95개조 테제’로 알려진 글의 원제는 “면벌부의 효능을 해설하기 위한 쟁론”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이다. 이는 중세 학문 공동체의 관행을 따라 작성되었다. 에르빈 이절로(Erwin Iserloh)의 문제 제기 이후 오늘날 ‘95개조 테제’가 실제로 교회 문에 게시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멜랑히톤의 글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10월 31일 게시 사건의 역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은 루터 당시에 학문적 토론을 위한 테제를 교회 문에 게시하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아니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루터가 면벌부와 관련하여 논쟁 거리가 될 만한 아흔 다섯 개의 테제를 게시 혹은 서신으로 발송했을 때, 루터는 중세를 종결짓고 종교개혁 시대를 새롭게 펼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테젤과 같은 일부 몰지각한 면벌부 장사꾼의 만행을 고발하며 바르지 못한 신학과 잘못된 관행을 내부로부터 바로잡고자 원했을 뿐이었다. 루터가 ‘95개조 테제’를 알브레히트 대주교에게, 이듬해에는 각 테제를 조목조목 설명한 ‘해설’(Resolutione)을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냈을 때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자정 능력과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95개조 테제’는 중세 교회의 교황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1518년에 작성된 “해설”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님께서 가견 교회에 맡기신 열쇠의 권세(마 16:19)가 행사되는 범위는 지상으로 제한된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너희가 땅에서 매면.. 땅에서 풀면”(마 18:18)이라고 말씀하셨다. 지상 교회의 치리권은 ‘땅에서’ 행사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교황과 교회법이 행사하는 치리권으로서의 ‘열쇠의 권세’는 결코 죽음 이후 세계로 적용될 수 없다. 요컨대 교황은 (면벌부 장사꾼의 주장처럼) 연옥의 형벌을 사할 수 없다(테제 #3-#13, #19-#36). 둘째, 면벌부는 교회법에 따라 지상 교회의 신자에게 부과된 치리와 해벌에만 관련한다. 면벌부는 죄책을 제거하지 않는다. 죄책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의해서만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면벌부가 (구원론과 관련한 중세적 개념인) ‘공로의 보고’와 무관함을 반복하여 강조한다(테제 #3-#6, #8-#16, #22~#36, #52-#61, #89). 셋째, 교회법에 따른 보속은 연옥과 무관하다(테제 #11, #15-#16, #18). 비록 루터가 당시 면벌부와 관련된 오류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루터는 중세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중세적인 개념들(교회법, 고해성사, 연옥, 면벌부, 공로의 보고 등)을 사용하며 글을 작성하고 있었다.

한편 오늘날 독자들은 ‘95개조 테제’ 안에 씨앗 형태로 배태된 종교개혁 시대의 주요한 원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첫째, ‘해설’의 선언문에서 루터는 일차적으로는 성경에서 발견되거나 성경으로부터 주장될 수 있는 바를 따라 말하겠다고 입장을 밝힌다. 둘째, 성례에 있어 핵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약속)과 이에 대한 믿음에 있음을 강조한다(테제 #7, #36). 셋째,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해 주어지며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테제 #62). 넷째, 신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모든 의는 우리의 것이 된다(테제 #37).

‘95개조 테제’가 일으킨 파장은 루터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두 달 안에 라틴어 판본이 비텐베르크, 뉘른베르크, 바젤 등에서 인쇄되었다. 이후에도 수백 혹은 수천 부의 라틴어 및 독일어 판본과 복사본이 유럽 곳곳에서 읽혔다. 루터는 1521년 1월에 파문되었고 4월에는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마지막 기회를 거절하였다. 이제 루터는 확실히 선을 넘었다. 돌이켜보면 루터가 종교개혁자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어 ‘95개조 테제’가 발단이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