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회 릴레이설교 4] 규칙 너머의 하나님의 마음(출 20:1-2)_박민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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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너머의 하나님의 마음(출 20:1-2)

박민근 목사(이음교회, 동서울노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은 일련의 규칙과 명령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자기소개가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소개 덕분에 우리는 십계명을 차가운 규칙이 아니라 따뜻한 메시지로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대개 하나의 율령이 선포될 때에는 그 율령의 선포자가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이며,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율령을 어겼을 때의 처벌이 얼마나 큰 지 알려줌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과 위축을 갖게 합니다. 간단히 말해 ‘내가 얼마나 크고 강력한 존재이며, 너희들의 왕으로써 너희는 감히 내 명령을 어길 수 없다!’라고 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반해, 십계명의 서두에 위치한 하나님의 자기소개는 사뭇 따뜻합니다. 그것은 지배자로서의 자기 위엄에 대한 과시가 아니라, 마치 ‘자, 이제 내가 너희에게 몇 가지 지침을 줄 것인데, 그 지침을 주는 나는 다름 아니라 너희를 애굽 땅에서 구원해준 너희들의 편 하나님이란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배자로서의 강압적 권위보다는 아버지로서 마음을 더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렇게 보면, 십계명은 단순한 계명의 나열이기보다 아버지로서의 메시지가 두드러집니다.

즉, ‘나밖에 다른 신은 없어! 다른 신을 섬기면 혼날 줄 알아!’ ‘거짓말 하고 도둑질하기만 해봐. 벌 받는다!’ 이러한 논조이기보다, ‘내가 정말 너희들의 아버지란다. 나 말고 다른 존재에게 갈 필요가 없단다.’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사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내가 보호해주마. 그러니 정직하게 행동해보자.’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고, 죄로부터 자유로운 성도가 어떠한 마음과 행동으로 이웃을 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기대가 담겨있는 계명들입니다. 의무와 규칙의 나열이기 전에, 믿음을 근간으로 한 인격과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계명이라는 규칙의 집합을 보기 이전에, 그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알고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이주일 이 말씀을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흡수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어린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의 존재는 실로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존재하고 다음 세대가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역사를 이어가고 계시다.’라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귀한 아이들이 먼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가득 알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본인들의 아버지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전력을 다해 편을 들어주고 계시며,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먼저 아이들에게 스며들어야 합니다.

현대의 문화와 분위기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이들이 알 겨를 없이, 여러 기능성과 생존방편을 익혀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기능성의 확보를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조바심을 내며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기능과 기량에 대한 확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기능과 기량이란 중요합니다. 삶의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요소이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능력들을 계발하는 것은 성실함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선적인 것을 놓친다면 그 의미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기능성’과 ‘기량’을 먼저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다움, 거룩한 인격, 죄로부터 자유로운 성도로서의 영혼을 우선 바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시각과 사랑의 눈으로 이웃을 대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십계명이듯 말입니다.

또 하나 우리는 너무나 ‘분석’과 ‘통계’에 갇혀 삽니다. 물론 여러 자료를 편하게 검색할 수 있고 다양한 지표를 공급받을 수 있는 현대사회의 기술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새 그것에 함몰되어, 분석과 통계의 지표가 알려주고 요구하는 것에 따라 긴장하기도 하며, 두려움도 가지며, 반대로 안심도 합니다. 단순한 일기예보와 경제지표에 따라 우리는 즉각적인 반응과 내일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당장의 예시입니다. 그러한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체감과 반응이 없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긴장하게 하거나 안심하게 하는 것은 분석과 통계로 인한 상황적 형편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과 우리 아이들의 관계를 먼저 충분히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단편적으로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귀함을 알고,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손길과 의지가 묻어 있다는 것을 아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자랄 수 있는 토대로 마련하기 위한 긴 각오와 애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매일매일 뒤엉키며 누려 가는 매일의 일상은 의미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