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세계 교회사 8] 박해받는 교회 : 10대 박해(2)_박상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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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교회 : 10대 박해(2)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

 

64년 네로(Nero) 황제 때부터 313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의 밀라노 칙령 때까지 약 250년 동안 발생한 박해는 길고 무서운 것이었다. 초대 교회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박해 때 로마인들의 고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칼로 기독교인들의 손가락을 난도질했고, 쇠를 녹인 물을 그들의 머리와 하체에 부었다. 어떤 기독교인은 산 채로 창자를 뽑히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고문이 얼마나 잔혹하고 괴기한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재판관들은 더 이상 새로운 고문 방법을 고안할 수 없게 되자 마구잡이로 기독교인들의 눈을 뽑고 사지를 절단했다.”

특별히, 250년 동안 이루어진 로마 제국의 박해와 관련하여 10번의 큰 박해를 언급할 수 있다. ‘10대 박해’라는 표현은 처음 제롬(Jerome)이 사용했다. 그가 380년경에 쓴《연대기》에서 10대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롬의 제자인 오로시우스(Orosius)에 의해 ‘10대 박해’는 구약 시대의 출애굽 당시 10번의 재앙과 비교하여 로마 제국을 통해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박해들로 강조되었다.

● 네로(Nero, 54-68) 황제의 박해
● 도미티안(Domitian, 81-96) 황제의 박해
● 트라얀(Trajan, 98-117) 황제의 박해
● 하드리안(Hadrian, 117-138) 황제의 박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 황제의 박해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191-211) 황제의 박해
● 막시미누스(Maximinus, 235-238) 황제의 박해
● 데시우스(Decius, 249-251) 황제의 박해
● 발레리안(Valerian, 257-260) 황제의 박해
● 디오크레티안(Diocletian, 284-305) 황제의 박해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표면적으로 보면 로마 제국의 날카로운 칼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기독교인들이 무참히 쓰러지는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로마 제국의 박해는 이러한 ‘힘의 대결’이나 ‘혈과 육’의 싸움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영적인 권세’에 대한 싸움이었다. 즉, 로마 제국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아닌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었는데, 칼을 휘두른다고 이길 수 있는 성질의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은 처음에 너무도 쉽게 기독교를 정복시킬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때리면 맞고, 칼로 찌르면 찔리고, 죽이면 죽는 기독인들이 무쇠로 만든 칼을 이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갈레리우스(Galerius)가 311년 죽음 직전에 로마 제국의 치안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기독교인들을 위한 관용령’을 공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는 급속도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이다”라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 초대 교회의 기독교 변증서인 《디오그네투스에 보낸 편지》에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서 살고 있으나 나그네들입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다하고 있으나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육신을 가지고 있으나 육신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으나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법을 지키지만 그들의 삶은 그 법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은 없으나 모든 사람들을 부요하게 합니다. … 그들은 착한 일을 하는데도 죄인들처럼 벌을 받지만 그 벌을 받으면서도 참 생명을 얻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물론, 로마 제국의 박해가 기독교에 긍정적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길고 혹독한 박해를 잘 견디어 냈지만 박해와 순교에 대한 신학적인 정리가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잘못된 전통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교회가 순교자들에 대한 존중을 넘어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면서 성인숭배와 성유물숭배 같은 미신을 발생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배교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교회에 다시 들어오려고 할 때 받아드리는 사람들과 받아드리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함으로써 교회의 분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