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세계 교회사 6] 박해받는 교회(I) : 박해의 원인_박상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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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교회(I) : 박해의 원인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

 

주후 30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첫 번째 신약 시대의 교회가 세워진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증거되었다. 로마 제국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들의 숫자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복음의 빠른 확산은 의도치 않게 기독교의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내부적으로는 교회가 이단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외부적으로는 특별히 교회가 로마 제국의 길고 모진 박해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즉, 64년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박해는 313년에 공포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e)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가 허락될 때까지 대략 250년 동안 지속되었다. 로마 제국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난 것은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이었다.

 

1. 정치적인 원인

● 기독교의 너무 빠른 확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로마 제국 전역에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을 두렵게 한 것이다. 기독교가 국가에 항거하는 정치단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비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며 로마 제국의 황제나 신들이 아닌 다른 신에게 헌신(충성)을 다짐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 로마 제국의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식의 형태이건 모든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당연히, 이교 신들뿐 아니라 로마 제국에 의해서 강요된 황제에 대한 신적인 숭배도 거부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에 대한 거절이 국가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 박해를 받은 것이다.

 

2. 종교적인 원인

● 로마 제국의 종교적인 배타성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의 종교들은 우상숭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로마인들이 즐기는 축제나 문화도 기독교에 반대되는 미신적인 요소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나오기를 싫어했는데,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구별된 삶이 로마 제국을 자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로마인들의 미신사상(迷信思想)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로마인들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 이유가 로마 제국의 신들을 미워하는 기독교인들 때문이라고 믿었다. 질병, 기근, 자연의 이변 등이 일어날 때마다 미신적인 군중들은 “무신론자들인 기독교인들을 없애라”라고 외치며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을 압박했다.

 

3. 사회적인 원인

● 로마 제국의 계급주의 때문이었다. 노예를 형제와 같이 취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노예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로마인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가진 독특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로마인들을 분노하도록 만든 것이다.

● 기독교인들의 생활 태도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 기독교인들은 은밀하게 비공개적인 예배를 드렸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이상한 소문들이 퍼지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인들에게 기독교인들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오해된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도덕적으로 문란하게 행동하고, 성만찬에서 사람의 피와 살을 먹거나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것 등이다.

물론, 신약 시대의 교회를 향한 첫 핍박자들은 기독교를 유대교 이단으로 간주했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스데반과 야고보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앞서 밝힌 원인들 때문에 로마 제국의 잔혹한 박해가 긴 시간 동안 발생된 것이다. 이 박해는 기독교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를 보존할 뿐 아니라 장구한 역사를 지속하기 위해 혹독하게 시험과 연단을 받은 시간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터툴리안의 말처럼 초대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서 세워지고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