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간 세계 속에서 영원을 사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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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세계 속에서 영원을 사모하자

시간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나 물어보는 순간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변화하는 물체나 작동하는 시계를 보고 시간과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뿐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란 변화하는 사건을 위해서 필요한 물리적인 양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이 시간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쓰고 또 써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시간이라면, 아쉬움 속에 한 해를 떠나보내거나 새해를 맞이한다고 흥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까지나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을 때운다. 시간을 아낀다”는 말을 하지만 시간은 아낄 수도, 때울 수도 없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차를 타고가면서 속도감을 느끼는 때는 출발할 때와 정지할 때이다. 일정한 속도에 진입하면 운전자는 속도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세월도 마찬가지다. 새해를 맞이할 때에는 세월을 의식하며 살다가 새해를 맞이하고 한두 주 보내다 보면 어느 새 세월이 흘러간다는 사실과 시간의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한 해가 끝나갈 즈음이 되면 또 다시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런 면에서 삶의 기회도 소중하지만 삶의 자세와 태도가 더 중요하다. 시간의 흐름을 주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시간을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만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 시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이는 것에 주목해서는 안 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차창 밖으로 수많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가노라면 도중에 내려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중이라면 도중에 내려서 들러보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는 경우라면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여행하는 도중에 좋은 곳을 만났다고 그곳을 자기 본향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신자는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스쳐 지나가는 것에 마음을 둬서는 안 된다. 타오르는 정욕도,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도, 지나가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고 하였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니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생을 누리고 있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직 완전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원을 사모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유한한 인생이 어떻게 영원을 사모하고 영원을 묵상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도 영원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 없다. 육신의 감각으로 영원을 경험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영원을 사모할 수는 있다. 영원을 사모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별들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닌 것처럼 영원과 내세에 대해 묵상하고 거기에 주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말한다. “끝은 무슨 끝인가, 세상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러니 먹고 마시고 즐기라!” 하지만 끝은 반드시 있다. 끝이 없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내세에서의 상과 벌에 대한 설교’에서 “사탄 같은 그러한 존재는 있지도 않고 지옥이나 영원한 고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사탄이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그와 같이 속삭이며, 신자들이나 특히 성직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부인하는 말을 들을 때 대단히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런 사람을 자기의 희생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사단의 거짓말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많은 인생들이 쾌락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성경은 시간이란 개념이 사라지는 때, 영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세상 너머의 세계, 곧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영원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영원의 세계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상태와는 다르다. 그곳에는 변화와 부패가 없고, 이별과 죽음도 없다. 눈물과 근심이 없으며 분쟁과 다툼도 없다. 신자는 시간 세계 속에서 이러한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