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 여행기 1] 일본에 울려 퍼지는 풍금소리_박병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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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울려 퍼지는 풍금소리

박병화 목사(부천 상동21세기 교회 증경총회장)

 

11월 28일(월)

2005년에 평소 아는 목사님이 일본을 한 번 다녀오자고 해서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리고 경기서노회에서 대마도를 다녀온 것 이외에는 일본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왠지 일본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번에 총회적으로 일본선교사님들을 찾아뵙고 교제를 하며 위로하며 식사를 대접하고 말씀을 나누는 대회에 초청을 받고는, 두 번 다시 재고할 필요도 없이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영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본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들을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만나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는 김만형 총회장님 부부를 비롯하여 허성철 총회서기 목사님 부부, 정성엽 총무 목사님 부부는 총회에서 남달리 나와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라, 일행들만 생각해도 피로가 싹 풀리고 목회에 지친 나에게 큰 활력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나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다.

월요일 아침 7시50분까지 인천국제공항으로 나오라는 총무님의 말씀을 듣고 약속 시간에 늦을 새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둘째 아들의 차분한 운전이 도리어 지루함마저 느끼게 했다. 우리 차는 어느새 제2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총무님은 미리와 있었고 총회장님과 서기 목사님이 연이어 시간들을 잘 지킨 것을 보니 벌써부터 일사불란하고 기가 막힌 선교여행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일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터졌다. 허성철 목사님 부부가 코로나 2차 접종만 해서 PCR 검사를 한 시간이 공항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30분이 지난 것이라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9시 55분에 출발인데 말이다.

결국 허성철 목사님은 공항에서 다시 검사하여 받든지, 아니면 PCR 검사를 받은 병원을 통해 증명서를 다시 발급받기로 하고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다음 비행기로 오기로 하였다. 총회장님 부부와 총무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9시 55분 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출발이 연기되어 12시20분에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우리 비행기는 오후 1시나 되어서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리타공항에서 문제가 또 터진 것이었다. 입국용 QR코드는 해 왔는데 세관용 QR코드는 준비가 안 되어서 그것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내 가방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방이 없어졌다고 하니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따라 오라고 했다. 그 사이에 그 누군가가 분실물 센터에 내 가방을 갖다 놓은 것이었다. QR코드 만들랴, 잃어버린 가방 찾으랴, 입국신고를 하랴 허둥대다가 다 마치고 나오니 2시간이나 걸린 것이었다. 우리들이 이렇게 시간을 걸렸는데 허성철 목사님은 혼자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처리하나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공항에서 나오니 김용민 선교사님과 민수식 선교사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 일행을 픽업해 주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차에 오르고 나자 온 몸에 피곤이 얼마나 몰려오던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나이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쳐버린 내 몸을 달래면서 우리는 동경호산나 교회를 향해 달렸다. 동경호산나 교회는 김용민 선교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로서, 김용민 선교사님은 부산호산나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19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이다. 그리고 민수식 선교사님은 동경은평교회를 15년째 시무하시는 선교사로서 은평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이다. 나리타공항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서 동경호산나교회에 도착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살펴보니 한국 차(車)는 한 대도 볼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 말고는 한국 차를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달리는 일본 차(車)를 보니 대부분 오래된 차들이요 맵시나 모든 면에서 평범한 차들이었다. 그리고 2년마다 차량검사를 하는데 인지대만 70만원이 든다고 한다. 게다가 조금만 손을 봐도 100만원이 든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경호산나 교회에 도착을 하니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이 속속 들어왔다. 최고참 중에 한 분이신 임태교 선교사님은 전철로 3시간이나 걸려서 오셨다고 했다. 1989년 4월에 일본에 입국했으니 33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임선교사님은 온수교회의 파송을 받아 지금은 야마나시현에 있는 오타마치 그리스도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최근에 백신 3차 접종 후유증으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또 한 분의 고참인 양윤중 선교사님은 사이타마 성애교회에서 36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데 선교사님의 흰 머리를 보니 마치 백전의 노장처럼 느껴졌다. 동경호산나교회 사모님은 일행들을 접대하느라고 음식을 만들기에 분주했다. 참석하기로 약속된 선교사님들이 다 도착하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음과 같다. 박성주 선교사와 유영주 선교사 부부, 김용민 선교사와 홍향실 선교사 부부, 민수식 선교사와 김난영 선교사 부부, 박수민 선교사, 임태교 선교사, 차효진 선교사, 양윤중 선교사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합신을 졸업한 후 동경에서 갈대상자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고 있는 사카모토 목사와 그의 아내 사카모토 카오리상도 참석하였다.

박성주 선교사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임태교 선교사가 기도를 했고 내가 설교를 한 후에 총회장 김만형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예배가 끝난 후 총회장님이 도시락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하였다. 그리고 총회장님이 참석한 8분의 선교사님들에게 물질로 격려하며 섬기셨고, 필자는 사모님들에게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각 지역에서 맛있는 과자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 일행들은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선교사역과 목회사역을 서로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선교사님들이 이런 말을 하였다.

일본에서 10년, 20년, 30년을 지내다 보니 일본에서는 이방인이요,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본에 와야 마음이 평안하고 고향에 온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선교사로 살다보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것이 선교사의 외로움인 것 같다.

일본을 방문한 우리들을 만나기 위하여 임태교 선교사님은 전철로 3시간이나 걸려서 왔고, 나머지 8가정의 선교사님들은 동경이나  근처 이곳저곳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3시간 동안의 예배, 식사, 대화 모임을 가지고 나서 다시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선교사님들은 이런 모임이 있어서 왔다고 하면서 선교사님들끼리 서로 만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총회나 HIS의 주도로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이 매우 필요함을 느꼈다. 함께 모이는 것은 물론 우리 선교사님들이 직접 사역하시는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그리고 사역현장을 확인하고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껴보았다.

합신총회세계선교회(HIS)에는 각 지역별로 후원이사회가 조직되어 있다. 물론 일본후원이사회도 있다. 후원이사회의 주도로 일본선교사대회를 개최하여 선교사 자녀들까지 참석하는 3박4일 일정의 선교사 가족수련회를 여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매년하기 어려우면 2-3년에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양윤중 선교사님을 통해서, 유영기 교수님께서 일본선교사들이 너무나 힘들게 사역하는 것을 보고, 좋은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콘도를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명 정도가 숙박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온천수가 너무나 좋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학자의 체면도, 스승이라는 자리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유영기 교수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허성철 목사님 부부가 인천공항에서 힘든 일을 만났지만 나리타공항에서의 힘든 입국절차를 무사히 통과하여 우리가 머물게 될 호텔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 일행은 다시 김용민 선교사와 민수식 선교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Daiwa Roynet 호텔로 향하였다. 일본 호텔의 특징은 방을 최대한 작게 만든 것이었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움직이다가 보니 온 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욕조에 따스한 물을 받아 온 몸을 담그니 온 몸의 피로가 전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일본은 온천 왕국이라, 따스한 물에 몸을 담갔는데도 온천수에 몸을 담근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