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바보의 삶 같은 형통한 삶_박형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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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삶 같은 형통한 삶

박형용 목사(합신 명예교수)

 

벌써 2022년의 월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우리는 매해 12월이 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우리가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고 다음 해에 더 잘 살겠다고 다짐한다. 성경은 성도들의 삶이 세상적인 의미로 성공하는 삶이 아니요 매일매일 형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을 읽으면 많은 사람들이 바보같이 어리석게 보이는 삶을 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판단 기준으로 볼 때 “바보”처럼 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평안은 뒤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항상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은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이 이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게 보이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고향을 떠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했을 때 아브라함은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정한 땅으로 그냥 떠났다(창 12: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독자 이삭을 죽인 후 태워서 제물(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도 아무런 이유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순종했다(창 22:1-14).

아브라함의 행동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바보”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아들 이삭을(창 17:19) 왜 죽이라 하시느냐고 항의라도 했어야 하지 않은가? 살인을 금하신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죽이라 하시느냐고 항의했어야 하지 않은가?(창 22:2). 아브라함은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순수했고 순종의 결과는 좋은 것이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리석게 보이는 행동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형통한 삶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참으로 어리석게 보이고 “바보”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리석고 멍청한” 일을 하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종의 형체”를 가지셨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왜 인간의 제약을 받으셔야 했는가?(빌 2:6-8).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실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왜 인간의 핍박을 받으셔야 했는가? 죄의 값인 죽음을 무력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는가?(빌 2:5-8). 성육신의 사건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바보”만이 할 수 있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하시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다(요 15:11; 17:13).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이나 위치를 생각하시지 않고 성육신하셔서 성취하실 일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좋아하시고 기뻐하셨다. 예수님은 손익을 계산하기 위해 주판을 두들기지 않았다. 예수님은 “내가 인간의 몸을 입으면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되고 손해는 또 무엇일지”를 따져보지 않았다. 예수님은 성육신의 삶을 이어가면서 모진 수모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보복적인 분노”를 인간에게 쏟아 붓지 않으셨다. 그는 겸손하게 그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줄 정도로 겸손하셨고(요 13:1-11), 죄인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참으셨고(마 27:30), 견딜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당장 드러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참으로 “바보”같은 일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은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훼손된 창조 질서를 회복하셨으며, 실낙원(Paradise Lost)을 복락원(Paradise Regained)으로 바꾸어 주셨다.

이제 연말을 맞이하고 새해를 내다보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어리석은 것 같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똑똑하고 유능해서 다른 사람을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들의 흠결을 발견하여 공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바보”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삶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삶이요, 겸손한 삶이며, 희생의 삶이다.

예수님의 “바보”같은 삶은 인간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셨고, 필요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를 채워주셨다. 예수님의 어리석은 것 같은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셨고, 희망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셨다. 예수님의 “바보”같은 삶은 우리들에게 형통한 삶을 주셨다.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바보”같은 삶을 산다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지는 불을 보듯 확실하다. 우리는 너무 똑똑한 삶을 산 것 같고 우월감에 매몰되어 산 것 같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처럼 “바보”같이 보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삶이 바로 형통한 삶이리라. 예수님처럼 “바보” 같은 삶을 산 사람들은 2022년 12월에 한 해의 삶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