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감사와 자유_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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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자유

원영대 목사(부천평안교회)

 

1992년 10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올 해로 30년이 되었다. 녹번동에 소재한 염광교회당에서의 일인데 당시 염광교회 담임이었던 박범룡 목사님이 안수 기념으로 성경을 선물로 주었다. 집에 돌아와 열어보니 속표지에 성경귀절이 적혀 있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잠언 27장 23절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이제 교회를 막 시작한 후배에게 격려의 말씀이기도 했지만 내 귀엔 주의 음성으로 들렸다. 그 말씀 붙잡고 30년 목회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이제 다음 달이면 그간의 사역을 내려놓아야 한다. 요 근래 부쩍 은퇴에 대한 대화가 많아졌다. 아내도 말은 아끼지만 내심 걱정이 되는가보다. 얼마 전  은퇴일을 정하고 난 후 지난날들을 회상하는데 두 개의 단어가 떠올랐다. 하나는 ‘감사’요 다른 하나는 ‘자유’다.

왜 감사인가?

늦깎이 신학생으로 공부를 따라가려는데 얼마나 힘들었던가? 가슴은 뜨거웠지만 머리는 굳어져서 7, 8년 동생들 틈에 끼여 공부하려니 쉽지 않았다. 학교 생활관에 거하면서 새벽기도에 소수의 학생들이 참석했는데 당시 한 해 선배였던 이영무 전도사가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주님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엉엉.” 그렇게 힘든 과정을 그래도 마쳤으니 감사하지 않은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것과 한 학기에 불과했지만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3년 동안 배운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교훈은 나의 목회의 방향과 지침이 되어주었다. 잘하진 못했지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이 중심만큼은 놓치지 않았고, 여름 겨울로 이어지는 목회대학원 강좌는 나의 목회사역에 안전한 등불과 지팡이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연중 목회계획을 세울 때면 그 기간을 비워 놓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했다. 나의 목회가 비틀거리면서도 곁 길로 새지 않은 것은 이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선배들을 만난 것도 감사한 것 중의 하나다. 나이 많은 전도사를 거둬 준 천응교회 서호 목사님과 나의 개척을 적극 지원해 준 지역 조정 이전의 경기노회원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30년 전 당시로선 작지 않은 금액 50만 원을 매 월 보내주었다. 덕분에 교회는 3년 만에 자립하였고 노회 앞에 감사의 편지를 드릴 수 있었다. 지금은 사랑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약한 교회들을 섬길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또 한 가지 30년 목회 중에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물론 둘 다 골골하면서 약을 달고 살지만 입원할 정도로 상하진 않았으니 감사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교회에 평안을 주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농담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평안’이라는 이름 가진 교회치고 평안한 교회 못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평안을 주셨다. 그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닌 주께서 주신 평안이라 확신한다.

왜 자유인가?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은퇴하면 뭐 합니까?” 듣고 보니 심각한 문제다. 30년 동안 교회 집, 집 교회만 드나들다 보니 은퇴의 날이 다가온 것이다. 은퇴한 후에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분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기도 한다. 나도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은퇴를 생각하면서 뭔가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은퇴가 너무 빨리 다가온 것이다.

선배 목사님에게 질문해 보았다. “목사님, 은퇴하신 후 무엇을 하시렵니까?” “계획 없어요. 당분간 그냥 쉬며 놀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년보다 몇 년 앞서 은퇴한 다른 목사님께 물었다. 그분은 정말 분주하게 사역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조기 은퇴하신 분이었다. “은퇴하니까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상기된 표정으로 “자유”라고 대답했다. 세 가지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사역으로부터의 자유, 둘째는 돈으로부터의 자유, 셋째는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금세 공감이 갔지만 ‘돈으로부터 자유’라는 말은 납득이 안 돼 다시 물었더니, 목회하는 동안 헌금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젊은 목회자들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 역시 교회당을 건축하고 난 후 십일조를 넘어 십의 삼조까지 한 기억이 있다. 믿음으로 했지만 작정 기간이 끝나길 손꼽아 기다렸던 쓰린 기억이 있다. 이 때 거룩한 채무가 발생한 것이다. 한번은 TV에 어떤 유명한 승려의 ‘무소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우리는 무소유가 아니라 마이너스 소유다!” 돈 문제는 은퇴한 후에도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
은퇴

이제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나는 동네에서 반바지 입고 다닌 적이 거의 없다. 나뿐 아니라 특수한 목사 말고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이제 정말 자유롭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은퇴식 답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하여 너무 관심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 보이면 ‘다른 교회 예배에 참석했나 보다’ 보이면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동기들과 모임에서 일찍 일어날 필요 없이 끝까지 앉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타지에 갔다가 새벽기도 때문에 늦게라도 올라가야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넥타이를 꼬박꼬박 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일 설교가 끝나면 다음 주일 설교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할 것이다. 집 밥 먹기 싫으면 아침에 아내와 함께 콩나물 국밥집에 가서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자유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사역을 마친 은퇴 목회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