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칼럼| 현대 문명에서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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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에서 교회의 역할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교회는 기초 학문들 훈련 통해서 생산적인 이웃으로 자리매김 해야

 

최근 그리스 사태는 현대사회에 와서 한 국가가 어떻게 몰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좋은 예가 되고 있다.

고대국가들 중에 그 문명과 그 문화가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가로서 그리스 국가 외에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서구 문명과 문화 및 학문에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게 되었을 때, 그 답은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땅과 국가가 지닌 언어의 우수성과 그 언어를 사용한 자들의 지적 생산성에 많은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진리들을 담아내는데 필요로 하는 언어의 우수성과 언어 사용에 있어서 지적역량의 함유도가 아직 고유한 글자가 없었던 고대 셈족 언어들이나 그림문자와 소리글자를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발전한 고대 애굽어보다 큰 장점을 그리스 언어는 가지고 있다.

그 언어의 특성 중에서 관사의 적당한 발달과 관계사의 다양성 및 부정사와 분사 사이의 구별로 인한 언어 사용의 다양성이 큰 장점으로 있다. 더구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새로운 명사들이나 동사들을 구성하여 사고의 질에 따라서 항상 새롭게 생성할 수 있는 점이다.

한국말은 글자 창제로부터 소리글자로 창제되었기 때문에 어떤 소리든 글자로 표현해 내는 데는 우수하지만, 뜻을 함축할 수 있는 새로운 명사들이나 동사들의 생성에는 약간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 잘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그림글자이지만, 오용하여 외국어로서 뜻을 담을 수 있는 한자어를 빌러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능력의 발전과 함께 잘 발전할 수 있는 문화와 학문의 언어로서 큰 장점을 가진 그리스 언어일지라도, 예를 들어 신적 호칭으로서 ‘나는 나인 것이다’라는 뜻을 가졌던 ‘여호와’라는 히브리어 언어와 잘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술어화할 수 없는 실체의 개념인 ‘우시아’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뜻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그리스 언어이었지만, 신적 호칭으로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인격체(alius)라는 의미가 포함이 되지 않아 어떤 것(aliud)으로서 히브리어 호칭에 그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정도라도 대응할 수 있었던 그리스 언어에 비해서 라틴어들(essentia, substantia)은 더욱 더 경쟁력이 되지 못했던 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교부들 사이에 논쟁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다른 언어를 가진 교회가 역사적 신학적 진리를 표현하고자 할 때, 언어 상 근본 문제들과 언어 상의 문제들을 띄어 넘어 역사적으로 깊게 성찰되어 최소한 오류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남겨진 신학적 용어들의 사용에 대해서 극히 조심해야 될 것이다.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표현한 언어들은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잘 그 언어의 의미를 잘 알고 더 잘 말할 수 있으며,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어들이란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고 그 언어들의 진정한 의미도 최종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 맡겨져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2003년에 보고되고 2003년 말에 많이 토론이 되었지만 계속 의심 속에 남아 있었던 다섯 퀘크 입자(테타 플러스)가 새롭게 13 테라 볼트에 도달한 스위스 제네바 입자 가속기를 통해서 거의 힉스 입자의 입증 수준 5 시그마를 넘어 9 시그마의 입증 수준에 가깝게 확증이 되었다. 그 입증에 의해서 표준적으로 이해된 강력입자 세계에 대한 이론들도 크게 변경되어야 할 위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일반적 원소들에 있어서 양성자들의 수와 중성자들의 수에 의해서 안정된 상태 혹은 불안정한 상태로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알아 왔지만, 그 구성인자들인 양성자나 중성자가 다시 어떤 강력 입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어떻게 그것들이 결합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론들이 급격히 무너지게 될 위기에 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창조된 세계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는 그렇게 묘연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행하며 활동하는 세계가 근원적으로 우리가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학문 세계의 이런 상황 하에서 최근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할 내용이 되고 있다.

현대 시대의 수학과 새로운 수학에 기초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그 그래픽들은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창조된 자연세계의 질서를 예측하고 검증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는데, 그런 분야의 학문적 훈련에 있어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탐구자들보다 경쟁에 있어서 뒤쳐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수학에 있어서 심오한 분야들을 개척해야 앞으로 세계를 위해서 지도자로서 어떤 역할도 하고 다른 이웃들에게 좋고 생산적인 이웃으로 남아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욱 그리스도인들은 창조된 세계와 그 세계의 비밀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 구원에 대해서 답으로 말씀하신 성경을 소지하고 있는 자들로서 수학과 같은 기초 학문들의 훈련을 통해서 인간이 진정한 사실과 그 진리를 아는데 얼마나 큰 실수들과 오류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검증해 보아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그가 친히 주신 자연과 같은 선물들이 얼마나 큰지를 조금씩 알아가야 비로소 참으로 정직하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그에게 돌려야 할 영광이 더 많아질 것이다. 

다른 땅에서는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을지라도, 한국 땅에서라도 교회가 그 이상을 실현하는 땅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