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난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가? _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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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가?

고상섭 목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팀 켈러는 로마서 8:28을 해설하면서 고난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제시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에는 고난과 아픔, 성공, 모두가 포함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면서 두 가지 양극단을 피하라고 권면한다.

첫 번째 극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에겐 고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형통의 신학이다. 성경은 한 번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난이 면제된다고 말한 적 없다. 히브리서 5:8은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도덕적으로, 성품적으로 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게 아니라, 지혜와 키가 자라셨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가셨다. 예수님은 성장하셨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고난이 필요했다. 예수님의 삶에도 고난이 필요했다면, 우리의 삶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극단은 고난을 통과해서 내가 더 강한 자가 됐다는 오해이다. 만약 고난이 인간 자체를 강하게 하고 성숙케 한다고 생각하면, 고난을 통과한 자들에게는 교만이 생길 위험이 있다. “나는 고난을 겪지 않은 자들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타인들 특히 고난 앞에서 어려워하는 자들에게 쉽게 조언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고난이 없는 것도, 또 고난이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면 고난에 대해 어떻게 해석, 반응해야 하는가? 고린도후서 1:8~9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이렇게 설명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이 바울 자체를 강하게 한 게 아니라,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백한다. 고난은 인간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케 하는 도구이다.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의 한 가운데 우리는 언제나 연약한 양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양이 늑대와 싸워 이기는 담대함이 아니라, 목자가 내 옆에 있음으로 오는 담대함이다.
고난이 나를 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감당 못하는 고난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완전히 낙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작은 고난에도 힘들어 하는 존재임을 직시해야 한다. 조금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상처 입은 치유자로 변화된다. 고난을 통과해서 나라는 존재가 타인보다 더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다. 로마서는 고난 자체가 선하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선이 되도록 역사하신다고 말한다.

고난을 좋아하거나 환영할 이유는 없다. 고난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들은 우리에게 좋은 것일 수 있다. C.S.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런 고난 속에서 낙심을 허락하고, 그 낙심 속에서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장케 하시는지에 대해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로운 연인”으로 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하나님을 의지케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약하지만 강한 신앙의 비밀을 삶으로 터득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자유로운 연인으로 변해갈 것이며,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