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들도 설교를 듣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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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들도 설교를 듣도록 해야 한다

 

누가복음을 보면 ‘유아’들과 관련해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한 말씀이 하나 소개되어 있는데,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안수하여 기도해주시도록 하는 과정에서의 사건(눅 18:15-17)이다.

동일한 내용의 본문들을 참고하면, 당시에 사람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유아들’ 곧 간난아이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그 때가 무리들 가운데서 여러 내용들을 말씀하시던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 19:13).

여기서 우리들은 제자들이 그처럼 유아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요구하던 것을 제지하려 했던 이유를 파악하게 되는데, 한참 진지하게 비유들과 여러 변론들을 듣는 와중에 아무런 지적인 능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듣는 일에 방해가 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 예수께서는 화를 내시면서 그들을 제지하지 말도록 하셨다(막 10:14).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복음을 강설하는 자리에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는데, 그들이 그 자리에 오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제자들에게 화를 내실만큼 어린아이들이 복음을 강설하는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사실 현대신학은 대부분 가시적인 개념들과 인간의 이성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이론들의 체계로서, 일종의 철학과 비슷한 것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그래서 칼 바르트를 비롯해 대다수 자유주의 학자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라도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들은 항상 유아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복음을 설교하는 예배의 자리에 나오도록 했으며, 유아들에게 반드시 유아세례를 주도록 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능력이나 믿음 혹은 신앙고백 이전에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가는 크고 놀라운 은총의 자리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