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어떤 삶을 신령한 삶이라 할 수 있나요?_박형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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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신령한 삶이라 할 수 있나요?

박형용 목사(합신 명예교수, 신약학)

 

성도의 영성(Spirituality)은 그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사랑은 성령(the Holy Spirit)의 은사가 아니요 성령의 열매이다. 사랑에는 항상 구체성이 뒤따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에서 그 구체성이 나타나고(요 3:16),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 구체성을 찾을 수 있다(롬 5:8 ; 빌 2:5~11). 드러몬드(Drummond)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사랑에 고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어렵지 않다. 나는 그리스도의 멍에가 쉬운 것이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멍에는 바로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길이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다른 어떤 길보다 그 길이 더 쉬운 길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다른 어떤 방법보다 그 방법이 더 행복한 방법이었다고 믿는다.”(Henry Drummond,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New York: Grosset and Dunlap, 1981, p. 26)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난과 죽음이 어찌 쉬운 길이었겠는가? 십자가의 길이 쉬운 길이었다면 예수님이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청하셨겠는가?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시면서 사신 것처럼 성도들도 매일 매일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 영적인 삶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사는 삶이다. 

첫째, 성도의 영성은 인내(patience)를 통해 나타난다. 인내는 기다리며 참는 것이다. 인내는 사랑의 수동적인 특성이다. 인내는 하나님의 시간 스케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인내는 시련을 참으며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 참는 것이다. 인내는 다른 사람의 연약성을 보고도 참는 것이다(약 5:9).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라고 가르치신다.

둘째, 성도의 영성은 친절(kindness)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3:4의 표현은 “사랑은 온유하며”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여기 사용된 온유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5) 할 때의 온유(praei'”)와 다른 의미로 “친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린도전서 13:4의 친절(온유, crhsteuvomai)은 바울이 단 한번만 사용한 특이한 용어이다(J. B. Smith, Greek-English Concordance to the New Testament. Scottdale: Herald Press, 1974, p. 374.: section 5441).

친절은 사랑의 능동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절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친절은 상대방에게 전하는 말 한마디나 한 행동이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때는 친절을 통해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 때이다.

셋째, 성도의 영성은 관용(forbearance)을 베푸는 것으로 드러난다. 관용은 투기와 반대되는 용어이다. 투기는 다른 사람과 경쟁 관계에 있을 때 나타난다. 그러나 관용은 상대방을 자기 품 안에 품는 행위이다. 성경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라고 가르친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는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 수 없다. 성도의 영성은 대적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가슴에서 확인된다.

넷째, 성도의 영성은 겸손(humility)한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교만이 최악의 죄라면 겸손은 최선의 덕목이다(잠 16:18).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라고 가르친다. 바울 사도가 “자기를 비어 자기를 낮추시고”(빌 2:7~8)라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묘사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겸손을 설명한 것이다. 이런 겸손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성도의 영성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다섯째, 성도의 영성은 예절(courtesy)을 지킴으로 실천된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상대방에 대해 예의범절을 지키며 살게 된다. 성도의 영성은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데서 나타난다. 예절은 사회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특성이다. 공공기물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은 다음에 사용할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줄을 설 때 새치기하지 않는 것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성도의 영성은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고 예절을 지키는 모습에서 확인된다.

여섯째, 성도의 영성은 이기적인 생각(selfishness)을 하지 않는다. 사랑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전혀 관심을 쓰지 않는다. 때로 자기 부인도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더 큰 것을 위해 자기 부인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은 이타적인 삶의 모습이다. 행복은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주는 데 있다(행 20:35). 성도의 영성은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이다.

일곱째, 성도의 영성은 온순한 성품(meekness)을 통해 드러난다. 온순한 성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성품을 뜻한다. 성미 급한 것은 인간 본성의 가장 파괴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다. 거의 완벽한 성품의 소유자일지라도 성미가 급하여 화를 속히 내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성도는 10년 쌓아 올린 탑을 일순간의 분노로 허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급한 성미의 사람은 천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천국 밖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영성이 풍부한 성도는 분노를 쉽게 내지 않는다.

여덟째, 성도의 영성은 정직한 생각(honesty)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직은 동기가 불순하지 아니하고, 밝은 면을 바라보며, 모든 행위를 가장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의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안도감을 갖게 되고, 마음이 즐겁고 느슨해지며, 많은 격려를 받게 된다. 영성이 풍부한 성도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되어 있다.

아홉째, 성도의 영성은 진리(truth)를 기뻐하게 되어 있다. 영성이 풍부한 사람은 상대방을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 내지 않고 바른 심성을 가지고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한다. 성도의 영성은 항상 진리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요 17:17) 성도를 자유하게 만든다(요 8:32).

이처럼 성도의 영성은 어떤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소유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성도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실천되고 있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따라서 성도는 성령의 은사를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특별히 성령께 의지하여 성령의 열매를 실행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로 이런 삶이 신령한 삶이요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내하셨고, 친절하셨고, 관용을 베푸셨고, 겸손하셨고, 예의범절을 지키셨고, 자기를 희생하셨고, 온순한 분이셨고, 거짓을 미워하셨고,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사는 삶을 사셨다.

<박형용 저,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합신대학원출판부,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