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레트로도 뉴트로도 아닌 언제나 신선한 트렌드, ‘물음’_이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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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도 뉴트로도 아닌 언제나 신선한 트렌드, ‘물음’

이은숙 시인(본보 문화부 객원기자)

삶의 신선함과 세련됨은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질까?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삶의 깊은 이면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느낌은 어떤 패션 감각이나 물질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듯싶다. 값비싼 장신구와 명품을 걸치고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도 어딘가 불안하고 어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박한 차림으로 말없이 있어도 왠지 믿음이 가는 편안한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필자는 삶의 깊은 이면이 느껴지는 사람, 말이 없어도 편안하고 꼭 필요할 때 결정적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면 믿음직스러우며 세련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차림새와 감각이 있다면 상황과 필요에 따라 금상첨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삶을 세련되게 가꾸어 주는 없어선 안 될 필수 항목은 그러한 외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소박한 차림에도 그 태도에 따라 깊은 세련됨을 자아내는 그 깊은 신선함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필자는 그것이 그 어떤 잇템(it-tem)도 아닌 바로 ‘물음’에서 온다고 말하고 싶다. 물음을 가진 삶. 자신과 타자, 그리고 환경의 갱신과 변화를 가능하게 할 ‘물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매사에 근신(謹身)한 자세로 시간을 두고 응시하는 태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또 섣불리 어느 한 편의 말만 듣고 어떤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거나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생각을 유보하는 신중함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흔히 ‘예술가’나 ‘작가’라고 하면 ‘어딘가 달라 보인다’라거나 심지어 좋지 않은 느낌으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다’, ‘특이할 것 같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가들이 정말 특별해 보여서 그런 경우도 있고 정말로 단지 ‘특이’해 보여서 그런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두 경우 모두 일반적인 트렌드(trend)를 따라가기보다 독자적인 물음으로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또 보통 사람들이 묻지 않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러한 평가를 듣는 것이리라.

예술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물음을 가지고 혹자의 말처럼 자신들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지평을 확장하고 변주(variation)하면서 자기 혁명적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라 불리는 조지 오웰(G. Owell)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의문과 회의, 자신을 향한 건강한 비판과 물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도 오늘날까지 유의미하게 회자 되며 이름을 떨치는 영향력 있는 예술가나 인물 중에는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의 요구대로 살았던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

실제로 앞서 말한 조지 오웰 역시 당대에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오늘날까지 예술성이나 그 학문적 깊이를 인정받는 위인 중에는 그 시대의 트렌드에 밝았거나 시대적 방향성을 감각적으로 잘 따라갔던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은 유의미한 아이러니이다. 그렇다면 천재 화가 고흐(Vincent. V. Gogh)나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 오웰 등과 같은 인물들이 당대의 방향과 무관한 길을 걸었음에도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회자 될 뿐 아니라 그 세계와 시선을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블로 네루다는 “타성이나 관습, 확정 속에 굳어있던 사물들이 다시 처음 모태의 운동을 시작하는 시간이 바로 ‘질문’의 시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웰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건강한 질문, 건강한 비판의식을 견지했다. 그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위대한 작가로 인식되는 이유는 늘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보는 ‘질문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신앙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직시하는 건강한 시력은 자신의 방향성을 자긍하기보다 질문의 시간에 둘 줄 아는 것에서 만들어질 것이다.(고후 13:5)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회의하며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끊임없이 말씀 안에서 확인하는 그 물음을 통해 건강하고 온전한 시력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벧후 3:17).

 우리가 어떻게 깨어있어야 할지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우리를 각성(覺醒)시키고 변화시켜줄 것이다. 현대 사회의 방향성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밝히 보면서도 우리는 세상의 트렌드를 견습할 것이 아니라 메타-트렌드라 할 수 있을 ‘물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늘 성경 속에서 찾으며 진정 내가 지향할 믿음의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